디지털 시대, 문학의 길을 논하다… 제5회 한중 작가회의

입력 2011-05-13 17:41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제5회 한중작가회의가 지난 11∼12일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서 열렸다. ‘전통과 현대, 디지털 시대의 문학’을 주제로 시안 탕화호텔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한중작가회의 준비위원회, 중국 시안시문학예술계연합회, 시안시작가협회가 주최하고 파라다이스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했다. 올해 회의에는 중국 32명, 한국 24명 등 총 56명의 문인이 참석해 이틀간 작품을 낭독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 측 대표로 기조연설에 나선 홍정선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서안이라는 지명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로 다가온다”며 “서안이 보통명사가 된 것은 한·중 관계의 과거인 당나라 때문으로 당시 세계 제국의 수도로 이룬 문화적 위대함이 장안을 보편적인 명사로 만들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홍 대표는 이어 “가장 중요한 문화교류국이었던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오랫동안 단절됐었지만 앞으로 틀림없이 양국이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생활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며 “두 나라 대표 작가들이 서로 깊이 이해하는 데 이번 회의가 일조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대표적 소설가인 쟈핑와(賈平凹) 시안시문련 주석은 “문화의 기억은 강한 것이다. 한중 양국은 그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면서 “문학인들은 어느 시대에서나 자신의 한계점을 만나게 마련이지만 이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학적 교량을 놓아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문학을 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연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중국은 크고 한국은 작다. 그러나 문학은 크고 강한 것을 싫어한다. 크고 강한 것에 대한 반발이 문학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면서 “중국은 크고 한국은 작되 문인은 한국이든 중국이든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이어 “그건 문학이 같기 때문이며 다만 언어가 다를 뿐으로 이제 남은 일은 양국의 문학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고 옮기는 일”이라며 번역과 통역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레이토오(雷濤) 산시성 작가협회 주석은 “한중 두 나라 간에 공유하고 있는 건 유교문화다”라고 전제한 뒤 “이는 한국과 중국이 인(仁)과 효(孝), 그리고 가정윤리에서 같기 때문에 기인하는 것이며 이런 부분이 우리가 교류할 수 있는 근본적인 공통점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에서 방영되고 있는 한국 드라마에서 감정을 느낀 것은 가족 내 인애(仁愛)사상과 여성으로서 현모양처였다”라며 “이것이야말로 과거에서부터 면면히 전해져 오는 한중 양국의 전통문화”라고 강조했다.

기조 발언에 이어 한국 측 기조 발제자로 나선 오생근 인하대 교수는 ‘문학의 위기와 과제’라는 주제의 발제문을 통해 “문학의 과잉생산과 풍요의 사회에서 문학의 종말은 문학책의 빈곤화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 생산방식을 통해서 나타난다”며 누구나 시를 쓸 수 있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됨으로써 시인과 작가의 신비성은 소멸되고 이제 ‘활자화된 것은 진리이다’라는 책의 특권적 위치도 사라지게 된 것을 문학의 민주화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며 양적인 풍요의 사회에서 문학정신의 실종을 먼저 거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측 기조 발제자인 양러성(楊樂生) 서북대학 교수는 ‘신문학의 역사적 자원이 전통문학’라는 발제문에서 “마치 한 나라 사람, 당 나라 사람, 오늘날의 사람들이 모두 면을 먹었던 것처럼 비록 그 식법의 다양함에 변화는 있을지라도 먹는 것은 여전히 면을 벗어날 수 있는 것과 같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이 절대로 빵, 피자, 소갈비 또는 다른 무엇만은 아니다”라며 “신문학에 대한 전통문화의 가치와 의미는 대체 불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는 한국에서는 소설가 김주영 박찬순 박상우 구효서 이현수 은희경 서하진 권지예 성석제 전경린 하성란 천운영 해이수씨와 시인 황동규 김형영 이시영 김기택 정끝별 장석남 이병률씨, 평론가 김치수 김주연 오생근 홍정선씨가 참가했다.

중국 측은 장편 ‘폐도’ 등을 쓴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쟈핑와, ‘맨발의 완선생’ 등을 쓴 여류작가 판샤오칭을 비롯해 천중스 중국작가협회 부주석, 장웨이 산둥성작가협회 주석 등 소설가와 수팅, 옌리 등 시인이 참석했다.

시안=글·사진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