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궁극적인 영성

입력 2011-05-13 17:43


누가복음 10장 27절

지구상에 존재하는 기독교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관찰해보면, 대부분 처음 일정한 기간 흥하다가 나중에는 시들해집니다. 그리고 더 들여다보면 이 나라들이 복을 지속적으로 받지 못한 궁극적인 이유는 ‘영성의 부재’였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 앞에서 하나님께서 찾으신 것은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렘 5:1) 특별한 믿음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요구되는 궁극적 영성이 있습니다(눅 10:27). 한국도 지금 다른 많은 실패한 기독교 국가들처럼 쇠락의 위기에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영적 방향을 되돌아보고 이 궁극적인 영성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장차 보잘 것 없는 나라로 추락하고 말 것입니다.

첫째로 마음을 다하는 영성이 실천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함은 “하나님보다 더 귀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 얻은 자식이었지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했을 때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세상적인 것들이 많다는 것을 되돌아 봐야 합니다.

둘째로 뜻을 다하는 영성이 실천되어야 합니다. 뜻을 다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마음에 들거나 목적하는 부분만을 편취하지 말고, 전체의 온전한 뜻을 정직하게 수렴하여 주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현상적 성취’와 ‘웰빙 지상주의’에 치우쳐 있어서, 고난이 있음에도 예루살렘을 가야 한다는 바울의 말보다 만류하는 두로의 제자들이나 아가보 선지자의 말(행 20·21장)을 더 친근하게 여기는 그릇된 풍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힘을 다해야 합니다.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으로 부자보다 많은 헌금을 드렸다고 주님께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속내의 영적 가치보다 현상적 외양의 가치를 더 크게 생각합니다. 현대의 가치 척도는 ‘말씀의 뜻’이 아니고 ‘현란함’과 ‘거대함’이 돼 버렸습니다. 자신과 남을 속이고 하나님을 우롱하는 기독교인이 많아졌습니다.

넷째로 목숨을 다하는 영성이 실천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순교신앙을 의미합니다. 신앙인들조차도 순교신앙을 골동품 취급하거나 특별한 사람들의 일로만 간주합니다. 그러나 순교신앙이 없으면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부활은 남의 일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계 20:4∼6). 바울 사도의 말씀대로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고전 15:19).

하나님보다 더 귀한 것이 없으며, 자신을 철저하게 부인하여 주를 따르며, 마음의 정성을 다해 주를 섬기고, 주님의 이름과 계명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궁극적인 영성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실천된다면, 한국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받은 복은 물론, 복의 특별함과 영속성을 얻어 명실공히 세계에서 우뚝 설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교회들이 드러내는 것에 집착하며 영적 일탈을 고집한다면, 우리 한국은 장차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잃어버린 채, 꽃이 피다 만 수많은 국가들 중의 하나로만 기록될 것입니다. 은총의 특별함과 영속성을 얻어, 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복되고 자랑스러운 우리 한국 민족과 교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태승한 강릉관동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