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의 아름답고 애틋한 마지막 이별여행… 영화 ‘알라마르’
입력 2011-05-13 17:29
구릿빛 피부의 아버지는 말이 별로 없다. 어린 아들과 오랜 이별을 앞두고 있지만 그는 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조차 건네지 않는다. 대신 아버지는 행여 바다에 빠질까 아들의 손을 꼭 쥐거나 아들에게 잠수하는 법을 가르치며 용기를 북돋을 뿐이다.
영화 ‘알라마르’는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여행을 담은 작품이다. 카리브 해를 배경으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보이지 않지만 끈끈한 감정을 관조하듯 담담한 시선으로 그린다.
멕시코 출신 호르헤(호르헤 마차도)와 이탈리아 출신 로베르타(로베르타 팔롬비니)는 해변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아들 나탄(나탄 마차도 팔롬비니)이 태어나지만 두 사람은 헤어지기로 결정한다.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호르헤와 로마로 돌아가야 하는 로베르타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다. 로베르타가 나탄을 데리고 이탈리아로 돌아가기 전 호르헤는 나탄과 자신의 바닷가 고향으로 어쩌면 마지막이 될 여행을 떠난다.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큰 카리브 해의 산호초 군락지 반코 친초로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낚시를 즐기고 도요새와 친구가 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다큐멘터리 기법을 차용한 영화는 아직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카리브 해의 투명한 바닷물처럼 맑고 잔잔하게 흐른다. 카메라는 등장인물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긴장감 대신 일상의 나른함과 소박함을 전하며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든다.
영화에서는 카메라맨의 촬영하는 모습이 거울에 슬쩍 비치거나 이웃 주민들이 카메라를 의식하는 장면 등이 여과 없이 등장한다. 이처럼 의도된 조작은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인지 극영화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철저하게 감정 개입을 차단한 무미건조한 카메라의 시선은 오히려 무엇인가 의미를 찾으려는 관객들의 심리를 자극한다. 이로 인해 관객들은 점차 아버지의 손짓이나 도요새의 날갯짓, 아들의 희미한 미소에도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맛보게 된다.
기승전결과 인과관계가 뚜렷하고 컴퓨터 그래픽 등 갖가지 화려한 효과를 총동원하며 흥분을 고조시키는 할리우드식 영화에 길들여진 관객들에게 영화는 어쩌면 따분하고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반짝거리며 일렁이는 바다와 시시각각 장대한 모습을 연출하는 하늘 등 자연은 관객들의 눈을 정화하고 마음을 치유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은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라 할만하다. 영화 속 자연은 사랑과 이별, 치유와 회복 등 인간의 감정을 모두 품는다. 또 우리가 잊고 외면하던 세계에 대한 묘한 동경과 그리움을 환기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2005년 다큐멘터리 ‘블랙 불’을 공동연출하며 산세바스티안영화제에서 최우수 라틴아메리카영화상인 오리종티상을 수상한 멕시코의 페드로 곤잘레스-루비오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자 장편 데뷔작이다. 멕시코영화의 부활을 알리는 곤잘레스-루이보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감독, 각본, 촬영, 미술, 편집 등 1인 다역의 재능을 발휘하며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2010 로테르담영화제 감독상과 마이애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툴루즈 라틴아메리카영화제 비평가연맹상 등을 받으며 ‘무공해 힐링 시네마’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전체 관람가, 19일 개봉.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