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일본의 내각無책임제

입력 2011-05-12 17:44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으로 발산되고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되는 상황이 두 달째 계속되고 있다. 적절한 대응 조치를 취하지 못해 문제를 확대시킨 간 나오토 정권은 정치적 책임을 거부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간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의 피난소를 위로 방문했다. 그런 행차가 으레 그렇듯 내용 없는 겉치레 위로말을 던지며 신속하게 빠져나가는 간 총리의 등 뒤에서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벌써 돌아갑니까?”

깜짝 놀란 간 총리가 몸을 돌려 항의한 주민에게로 향했다. 총리에게 소리친 중년 남성은 “그렇게 무시하면 우리는 어쩌란 말입니까?”라고 항의했다. 옆에 있던 여성도 “매우 상처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총리가 온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던 주민들이 대면할 틈도 없이 돌아서는 그를 보고 분노를 터뜨린 것이다. 결국 단시간에 끝내려던 방문 계획은 피난 세대 전부를 들르는 것으로 바뀌어 1시간 20분이 걸렸다.

야당인 자민당이 아무리 총리 사퇴를 주장해도 쇠귀에 경 읽기다. 같은 민주당 내에서도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지만 ‘마이 웨이’다. 지난달 말 일본 경제계의 간 정권 지지율이 2%라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강을 건널 때는 말을 갈아타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일본 정가에서는 ‘말이 급류에 떠내려가고 있으므로 말을 바꿔 타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자민당과 민주당 오자와파가 힘을 합하면 내각불신임안을 통과시켜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치를 수 있다. 그러나 대지진 후인 3월 23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현재의 중의원소선거구에서 표 가치의 불평등이 있다고 판결함으로써 선거구 획정을 다시 할 때까지는 총선거가 불가능하다.

지난 6일 간 총리는 도쿄 서남쪽 180㎞에 위치해 사고 시 방사성 물질이 편서풍을 타고 도쿄를 직격할 우려가 있는 하마오카 원전의 가동 중지를 요청했다. 시민운동가 출신인 간 총리가 시민사회 일부의 원전 반대 움직임에 편승해 국가의 대동맥인 에너지 정책을 건드려 정치적 연명을 도모한다는 비판이 따랐다.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하토야마 유키오 등 간 총리의 전임자 4명은 정치적 곤경에 처하자 개인적 계산으로 총리직을 집어 던졌다. 이들이나 그만둬야 할 때 그만두지 않는 간 총리나 무책임하기는 한가지다. 무책임은 일본 내각제의 고질이 되어가고 있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