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문지방 넘기] 이 시대 ‘요담의 우화’는…
입력 2011-05-12 17:33
성경을 읽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앞뒤 문맥을 잘 살피면서 읽는 것과 해당 본문을 따로 떼어서 읽는 방식입니다. 본문을 따로 떼어 읽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더러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이단이나 사이비 단체에서 악용되곤 하는 방식도 이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본문의 본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해석이 나오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항상 전체 흐름을 파악하면서 그 흐름 속에서 해당 본문을 해석해야 본문의 참 뜻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요담의 우화를 예로 들어봅시다. 사사기 9장에 나오는 요담의 우화가 어떤 내용인지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나무들이 모여서 왕을 세우기로 했는데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가 왕이 되는 것을 거절하여 맨 나중에 가시나무가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요담의 우화만을 따로 떼어서 읽으면 이 이야기의 분위기는 평온하고 차분한 듯합니다. 여기에서는 무슨 갈등이나 긴장감을 찾아내기 힘듭니다. 마치 화롯불에 둘러앉아 사랑방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이도 느긋한 심정으로 도란도란 이야기했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하지만 그 앞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우선 앞부분에는 아비멜렉이 왕이 되기 위해 70명의 형제를 한 바위에서 죽였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삿 9:5).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아들로서 권력욕이 대단한 인물입니다. 이름조차도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뜻입니다. 아비멜렉은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세겜에 가서 세겜 사람들을 선동해 자기편으로 만듭니다. 그런 다음에 추종자들을 데리고 가서 잠재적 경쟁자인 자기 형제 70명을 모조리 죽입니다. ‘용의 눈물’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입니다.
이때 아비멜렉의 형제 중에서 용케 살아남은 사람이 바로 요담입니다. 요담은 아비멜렉의 칼날을 피해 숨어 있다가 세겜 사람들에게 나타나서 나무들이 가시나무를 왕으로 세운 요담의 우화를 들려주고는 또 다시 바람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요담은 목숨을 걸고 나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런 전후 사정을 알고 나면 요담의 우화가 그리 평온한 분위기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즉각 알아챌 수 있습니다. 요담이 세겜 사람들 앞에서 이 이야기를 선포할 때 틀림없이 떨리는 음성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결연한 심정으로 말했을 것입니다. 혹시 무리들 가운데 자기를 고자질할 사람은 없는지 불안한 눈초리로 좌중을 살피면서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마친 다음에는 번개같이 달아나서 깊숙이 숨어버렸습니다.
요담의 우화에는 악한 권력자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담겨 있습니다. 아합 왕을 찾아가 나봇의 죽음을 고발한 엘리야 예언자, 우리야를 죽인 다윗을 비판한 나단 예언자와 일맥상통합니다. 이들은 비장한 각오를 하고 악한 권세에 저항했습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요담의 우화를 읽으면서 제주도의 4·3사건을 다룬 소설 ‘순이 삼촌’이 떠올랐습니다. 또한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가 떠올랐습니다. 이 시대 ‘요담의 우화’는 또 무엇이 있을까요?
오종윤 목사(군산 대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