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통역이 필요해”… 아기들의 언어 세계, 소통을 하려면
입력 2011-05-12 21:25
기저귀 찬 쌍둥이 아기가 대화를 나눈다. 냉장고 앞에서 손짓 발짓 섞어가며 서로에게 뭐라 말하는 18개월 쌍둥이 샘과 렌. 들리는 ‘말’이라곤 “따다다다다” 뿐이다. 샘이 발로 바닥을 쿵쿵 치자 렌이 따라하고, 인사하듯 서로 손을 흔들고, 절레절레 고개를 젓다가 폭소를 터뜨린다.
미국 뉴욕에 사는 샘과 렌의 아빠는 쌍둥이의 이런 ‘대화’를 촬영해 지난 2월 14일 2분8초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지금까지 2354만여 차례나 클릭됐다. 유명해진 쌍둥이는 미국 ABC방송에도 출연했다(스튜디오에서도 앵커의 질문에 “따다다다다”라고 답했다).
최근 SK텔레콤은 TV 광고에 이 동영상을 담았다. 쌍둥이 부모에게 부탁해 얻어낸 추가 영상에서 아기가 “초콜릿”과 비슷한 발음을 하는 걸 발견하고, 이를 자사의 소셜커머스 브랜드 ‘초콜릿’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아기는 과연 “초콜릿”을 말한 것일까. 쌍둥이는 정말 ‘대화’를 한 것일까. “따다다다다”는 무슨 뜻일까. 아기의 언어, 어른도 노력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 걸까.
심리언어학회장인 조숙환 서강대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어린이 250여명의 언어 발달 과정을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는 아기의 ‘말’을 해독하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의 도움을 얻어 아기를 ‘인터뷰’ 해보기로 했다.
18개월 쌍둥이를 인터뷰하다
아기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변’ 듣는 과정을 비디오 촬영하면, 조 교수가 이를 보고 아기의 답변을 해독해주기로 했다. 그가 제시한 인터뷰의 조건 몇 가지가 있다.
“시간은 적어도 30분 이상이어야 하고요. 식구나 다른 아기와 상호작용 하는 내용이 있어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어요. 옆에 계신 분이 주변 상황도 기록해 주셔야 합니다.”
인터뷰 대상은 경기도 성남에 사는 생후 18개월 이란성 쌍둥이 자매 하랑이와 하음이. 샘과 렌 형제와 같은 나이에 성별만 다르다. 엄마 송명은(31)씨는 “나도 아기들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며 자매의 생애 첫 인터뷰를 흔쾌히 승낙했다.
11일 오후 5시30분, 송씨 집에선 하랑이와 하음이가 아빠의 스마트폰을 갖고 놀고 있었다. 질문을 시작했다.
-이름이 뭐예요?
“…”
-누가 언니예요?
“…”
-몇 살이에요?
“…”
아무래도 질문이 잘못된 것 같다. 다시.
-뽀로로 어딨어요?
1분 먼저 태어난 언니 하랑이가 손가락으로 거실 바닥 매트에 그려져 있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뽀로로’를 가리켰다.
-그럼 에디는 어딨어요?
에디는 뽀로로의 친구 캐릭터다. 뽀로로는 날고 싶지만 날 수 없는 펭귄, 에디는 여우. 하랑이 손가락이 어딘가를 짚긴 했는데 에디는 아니다. 이 질문도 시들했는지 하랑이는 동생 하음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미끄럼틀이며 장난감이 가득한 방에서 하랑이가 먼저 미끄럼틀 위에 올라갔다.
-우와, 미끄럼틀이네. 하랑아. 미끄럼틀 타 봐.
이름을 부르자 하랑이가 고개를 돌렸다. 싱긋 웃어 보이더니 미끄럼틀 오르내리기를 두어 차례 했다. 하음이는 계속 아빠의 스마트폰을 갖고 노는 중이었다. ‘열 꼬마 인디언의 노래’가 흘러나오자 하랑이가 옆에서 몸을 좌우로 흔들흔들 했다. 박수도 쳤다. 하음이 손에 있던 스마트폰을 슬며시 가져왔더니 하음이가 운다. 울음 끝은 짧았고 눈물도 고이지 않았다.
“에! 에헤에헤. 아따따이. 아뿌띠디이.”
미끄럼틀을 오르던 하음이가 순간 말을 시작했다.
“헤헤이. 아. 에잉 이잉. 아빠차. 아바아.”
‘아빠’처럼 들렸는데, 송씨는 “아빠 찾는 건 아닌 듯하다”고 했다.
자매는 미끄럼틀을 번갈아 타며 옹알이를 주고받았다. 엄마를 발견한 하음이가 방에서 나가자 하랑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하음이가 두 팔을 벌려 하랑이한테 다가가 감싸 안는 시늉을 했다.
“언니가 우니까 달래주는 거예요.” 송씨는 하음이의 ‘보디랭귀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송씨에 따르면 하랑이, 하음이가 말할 수 있는 단어는 ‘엄마’ ‘아바(아빠)’ ‘할미니이(할머니)’ ‘하아버지(할아버지)’ ‘맘마’다. 알아듣는 단어는 자기 이름과 ‘주세요’ ‘우유’ ‘이리오세요’ 등. 배가 고프면 우유를 줄 때까지 울고, 졸리면 눈을 비비거나(하랑이) 옷자락을 잡아당긴다(하음이). 조용하게 노는 편이지만 기분이 좋으면 소리 내어 웃거나 알 수 없는 말을 다양한 패턴으로 구사한다.
쌍둥이는 시종일관 서로에게 반응했다. 50㎝ 이상 떨어지는 일도 거의 없었다. 조 교수가 제시했던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됐다.
인터뷰를 해독하다
하랑이 하음이 녹화 영상은 1시간20분 분량이었다. 조 교수는 “이런 영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때는 10초 간격으로 영상을 끊고 슬로 모션으로 반복 재생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분석 결과와 관련해 언어적 해석, 그러니까 음성에 담긴 ‘말뜻’은 내놓지 않았다.
“지금 하랑이와 하음이가 하고 있는 것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말의 의미를 전달하는 대화는 아니죠. 목소리든, 몸짓이든, 표정이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서로 소통을 하는 겁니다. 아기의 언어를 이해하려면 아기와 눈높이를 맞춰야 돼요.”
그는 아기가 놓인 상황까지 모두 감안해 아기가 사용하는 언어의 체계를 끄집어내고 해석했다.
“아기들이 커뮤니케이션(의사소통)을 하느냐, 못하느냐를 봤습니다. 분명 커뮤니케이션이었어요. 그리고 지극히 정상적인 언어 발달이 이뤄지고 있었지요. 언어 발달이 순조로운지를 보여주는 핵심 전제조건 두 가지가 발견됐거든요.”
그것은 공동관심과 상호작용이다. 공동관심은 같은 사물 혹은 대상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하음이가 스티커를 하랑이 발에 붙여 주니까 하랑이가 그걸 떼서 다시 동생 발에 붙여줬어요. 자매는 스티커라는 공동 관심사를 가진 거예요. 이것과 비슷한 장면이 여러 번 반복됐어요. 돌이 지나면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건데 자폐아는 청년이 돼서도 할 수 없습니다. 상호작용은 함께 관심을 갖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서로를 자극하고 주고받는 과정이에요. 하랑이가 미끄럼틀을 바라보니까 하음이가 미끄럼틀에 올라갔죠. 하음이가 내려오자 처음엔 하랑이가 가만있죠. 하음이가 다시 하랑이를 쳐다보며 미끄럼틀에 올라가니까 하랑이도 같이 따라하더란 말이죠.”
조 교수는 하랑이와 하음이가 뉴욕의 샘과 렌보다 더 발달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마주 서 있으면서도 시선을 마주치는 것이 분명치 않았던 샘과 렌 형제와 달리 하랑이 하음이 자매는 서로 정확히 ‘눈 맞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눈맞춤이 확실치 않으면 커뮤니케이션 발달이 ‘공동관심’ 단계 이상 나아갔다고 보기 어려운데, 하랑 하음이는 이미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며 “언어 발달이 빠르고 양호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아기들이 이제 어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입문 단계에 들어섰다는 뜻이라고 한다. 엄마가 아기와의 진짜 대화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아기에게 의사소통을 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생기는 시기가 생후 18개월 무렵이다. 조 교수는 “아기는 18개월쯤부터 엄마의 마음을 읽기 시작한다. 그 능력이 48개월쯤 되면 완성된다”고 했다. 샘과 렌, 하랑과 하음이가 대화하듯 서로 반응한 것도 ‘마음 읽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이렇게 아기의 언어를 연구하는 학자가 국내에 70여명 있다. 국내 심리학자 중 최초로 아기 언어 연구를 시작한 서울대 조명한 명예교수는 저서 ‘한국 아동의 언어획득 연구’에서 이렇게 말했다.
“언어발달 연구는 엄격한 의미에서 이론을 갖추고 있지 않다. 발달의 진행을 예측하거나 통제한다는 뜻에서의 이론은 있을 수 없다. 연구자는 어린이의 자발적인 말을 겸허하게 기록할 뿐이다.”
아기의 언어. 이해하고 싶다면 사랑스럽고 작은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작고 영롱한 눈을 맞추며, 나에게로 굴리는 공을 받아 다시 굴려주라는 얘기다. 그래야 아기의 말이 들린다.
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