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in&out] TV, 맛집을 말아먹다

입력 2011-05-12 20:11


영화 ‘트루맛쇼’ 김재환 감독… “내가 방송·식당 커넥션 까발린 이유”

그는 좀 재수 없는 캐릭터다. 금융회사 다니다 PD 지망생 친구들 따라서 MBC 입사시험 응시했는데 ‘우연히’ 합격했다. 같이 시험 친 친구들, 전부 낙방했다.

방송국 PD로 일하면서는 휴가 때 사비 털어 참치 원양어선 타고 ‘시청률 대박’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당시 MBC 사장은 그의 ‘프로 정신’을 본받으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가 배 탈 때 휴가 내고 놀러갔던 동료들, 마음고생 좀 했다.

퇴사한 후에 외주제작사 차렸는데 이번엔 칼끝을 방송국에 겨눴다. 수입의 70∼80%를 MBC에서 벌어들이면서, 지상파 방송 맛집 프로그램의 ‘협찬 비리 관행’ 폭로하는 영화를 찍었다. 그가 차린 회사 직원들, 요즘 MBC 가면 인사해도 잘 안 받아준단다.

그는 그런 존재다. 멀리서 보면 튀고, 가까이 오면 불편한.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첫 영화 ‘트루맛쇼’를 만들자마자, 정식 개봉 전 전주국제영화제 2회 상영만으로, 화제의 중심에 선 남자. 김재환(41) 감독 얘기다.

다들 자기 밥통 끌어안고 조심조심 사는데, 밥줄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그는 도발적으로 산다. 이 남자, 의심스럽다.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야, 보통 사람은 그를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보통 사람은 순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트루맛쇼’를 만든 의도, 세 가지 정도로 예상해봤다. 첫째, 경제적 관점에서 당신은 돈이 많다. 고로, 2002년 창업한 외주제작사 말아먹어도 상관없다. 때론 양심조차 경제적 여유의 산물이니까. 둘째, 심리적 측면에서 당신은 분노에 차 있다. 방송국과 외주제작사는 갑과 을의 관계니까. 불공정한 일 많이 겪어서 한번 치받고 싶은 거다. 셋째, (이건 나도 좀 회의적이지만) 당신은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첫째, 돈이 많아서? 돈이 많아봐야 얼마나 많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돈 문제 때문에 당장 제약을 받아서 제 상상력을 못 펼칠 상황은 아니니까 만들었겠죠. 둘째, 당한 거 갚아주려고? 전 상처나 분노, 증오 같은 거 없어요. 한번도 갑과 을의 관계라 생각한 적도 없고, 주체적으로 일했고. 셋째, 정의? 맞아요. 누가 거짓말 하고 양심을 팔아야 하는 상황, 두고 못 봐요.

다른 외주제작사들, 이 영화 때문에 자기들이 괴롭다면서 싫어해요. 제 영화 본 기자들이 외주제작사들한테 방송국 관행에 대해 물으면 제작사들 이렇게 답해요. 방송국에서 충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아, 내가 3년 동안 뭘 위해서 스트레스 받아가며 영화 만들었나, 기운이 쫙 빠지기도 했고.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갑과 을이 대동단결해서 트루맛쇼를 물어뜯는 상황, 이게 얼마나 황당합니까? 저와 트루맛쇼는 우리 사회에 큰 웃음 드렸어요. 게다가 착취와 증오의 관계인 방송국과 제작사를 대동단결케 해줬으니 트루맛쇼가 사회통합 했네요.

누군가와 사이가 안 좋아서 영화를 만들었다느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설이 난무해요. 제일 웃긴 게 뭔지 아세요? 종편 사주설. 종편의 사주를 받았다는 거예요. 하하.”

-‘강남 좌파’ 같다. 약자도 아니고, 사회에 맺힌 한도 없는데, ‘쿨하게’ 정의를 말한다.

“그런 이야기 다른 데서도 들었어요. 저는 보수우익 날라리라니까요. 저는 좌파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물론 정체성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고요. 앞으로 당할 고초가 눈에 보이는데 이 영화 만들었다? 이해 안 되겠죠. 이후에 일어날 상황, 두렵지 않아요. 자본금 다 떨어진 다음에 소송으로 돈 잃을 수도 있어요. 그럼 다시 시작하면 돼요.

이 영화 찍고 회사 직원들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어요. MBC 김재철 사장이 우리 일감을 자를지도 모른다, 당신들 직업 안정성에 심각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놀라지 말고, 두려워 말고, 걸어라. 앞으로 일거리 없어지면 우리 자본금 떨어질 때까지 영화 보고 족구도 하면서 재밌게 지내다 다들 집에 가자. 가족들도 이 영화 만든 거, 이해 못했어요. 사람들은 자꾸 이해관계라는 인식의 틀로 의도를 생각해요. 제가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건 자기한테 이익 되고, 꼭 돈이 되기 때문에 일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저는 PD고, 감독이니까 직업적인 소명의식상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트루맛쇼는 맛집 방송이 식당으로부터 어떻게 돈을 받는지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경기도 일산에 가짜 식당을 차린 뒤 SBS ‘생방송 투데이’와 MBC ‘찾아라! 맛있는 TV’의 ‘스타의 맛집’ 코너에 출연했다. 맛집 홍보대행사를 통해 프로그램당 협찬비 900만∼1000만원이 건네졌다.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은 가짜 손님의 대사를 만들었고, 행동과 표정도 ‘맛있게’ 연출했다. 지상파 방송은 시청자를 속였고, 가짜 식당을 차린 그는 지상파 방송을 속였다. 속고 속이는 블랙코미디.

김 감독의 영화가 알려지자 방송국은 곤경에 빠졌다. 방송국의 반응은 이랬다. 영화 제작진의 함정취재에 걸렸으며, 대다수 맛집 프로그램은 아무 문제가 없고, 법무팀에서 해당 영화에 법적 대응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방송국이 소송을 걸었나? 한국 사회에서 방송 3사와 싸워 이긴 전례가 없다고 들었는데.

“3년간 영화 준비했는데 그 사이 저희는 온갖 시뮬레이션을 다 돌렸어요. 방송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럼 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방송국이) 전혀 한 치의 오차 없이 너무 상투적인 반응을 보이니까 재미가 없네요. 법적 대응도 아직 없어요. 나중에 법적 대응 해오면 그 순간 딜레마에 빠지게 될 거예요. SBS는 저희 식당이 출연한 그 사례만 문제였다고 주장하죠. 하지만 저희는 SBS의 부정한 또 다른 사례를 다 수집해 놨거든요.

이 영화 콘셉트가 ‘역지사지(易地思之) 퍼포먼스’예요. 부제는 ‘그들의 방식으로 그들을 촬영하기’. 역할 바꾸기 게임을 보여주는 거죠. 그 사람들(맛집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이 방송 만드는 방식 그대로 그 사람들을 촬영하는 거죠.

방송국에서 함정취재 걸렸다고 말하잖아요. 그거, 완전 자기 얼굴에 침 뱉기예요. 저는 콘셉트니까 몰래카메라 썼지, 그들은 늘 하는 것들이에요. 예를 들어 볼까요? 유명 설렁탕집의 국물 내는 비법을 취재하기 위해 식당 차릴 것처럼 제작진이 위장하고 조리사들 면접을 보죠. 한우 쓰면 비싼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질문해요. 유명 설렁탕 가게에서 일했던 조리사들은 이렇게 답하죠. 원가 아끼기 위해 예전에 일하던 식당은 이런저런 음식물을 썼다고. 그렇게 방송 만들거든요. 저는 좀더 과감하게 실제 식당을 차리는 방법으로 퍼포먼스 했어요. 왜냐? 트루맛쇼는 격이 다른, ‘블록버스터’니까.

어떤 CP(책임프로듀서)는 트루맛쇼에 대해 이렇게 말했더군요. 맛집 방송에서 가짜 손님 정도는 애교라고. 지상파가 그 정도 수준까지 천박해진 거예요. 가짜 손님이 맛있다, 없다 할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것, 대본을 읽어주는 것, 이건 무서운 거예요. 이건 정보 프로그램이거든요. 먹어 본 사람들의 평가를 보고 영향을 받고, 시청자는 갈지 말지 결정해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있어요.”

-MBC 출신 PD가 MBC를 비판하는 데 거리낌은 없었나.

“제가 PD로 일했던 MBC 동료 선·후배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요. MBC도 삼성 광고 끊어지면 타격 받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을 비판할 수 있는 것, 광고주를 비판할 수 있는 것, 전 그게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거라 보거든요. 그런데 요즘 대기업 비판도 거의 사라졌어요. 돈이 최고인 세상이 됐으니까. 저는 몸으로 퍼포먼스 보여주는 거예요. 저희 회사 매출 70∼80% 올리는 주요 고객 MBC를 제가 비판하는 거예요. 당신들은 할 수 있는가, 당신들이 늘 술자리에서 말하는 언론으로서 MBC의 정체성을 보여달라는 거죠.”

트루맛쇼는 레스토랑에서 돈 내고 음식 주문하듯, 식당도 돈 내고 TV용 맛집이 된다고 고백한다. 맛집 전문 브로커가 방송용으로 급조한 메뉴 ‘캐비어 삼겹살’이 방송에 수십 차례 방영되고, 고발 프로그램에서 위생 불량으로 지적된 음식점이 맛집으로 둔갑하고, 맛집에서 방송된 특정 메뉴를 먹기 위해 식당에 갔다가 그런 메뉴는 없다는 말을 듣고 발길 돌린 시청자들의 상황을 조명한다.

영화가 제작된 2010년 3월 둘째 주, 1주일간 방송된 맛집은 177개. 그러니까 1년간 9000여개의 맛집이 방송되는 셈이다. 이 중 진짜 맛집을 가리는 게 미디어 소비자의 숙제로 주어진다.

-외주제작사가 식당으로부터 돈 받는 상황을 방송국이 몰랐을 가능성은?

“SBS는 회사 차원에서 해먹었다고 봐요. 입증할 수 있는 녹취들이 남아 있어요. 제작사가 홍보대행사와 짜고 식당 섭외했다면 아이템 제시하고, CP에게 확정받으면 끝이에요. 그런데 SBS는 그 다음 단계인 광고국의 브랜드 심사를 거치게 하죠. 브랜드 심사가 뭐냐, 협찬을 받을지 말지 결정하는 겁니다. 프로그램 승인이 광고국까지 가서 오케이 났다는 건, 협찬금이 방송국으로 들어가는 루트라는 거죠.

SBS가 그런 식으로 장사 해왔다는 거, 제작사는 다 알아요. 양심선언만 안 할 뿐이지. 홍보대행사가 이렇게 말해요. 식당이 협찬하는 돈은 본사(SBS)에 들어가고, 나머지 커미션을 자기들이 받는 거라고. SBS는 홍보대행사 직원의 말실수라고 우기겠죠. SBS가 절 고소하면 저는 맞고소할 겁니다. 홍보대행사와 SBS 간에 오가는 세금계산서, 통화내역, 다 캐자는 거죠. 판도라 상자가 열리는 겁니다.

방송국이 저에게 법적 대응 운운하는 거, 어디서 많이 본 상황 아닌가요? 정치세력, 대기업이 보도 막으려고 언론사에 법적 대응하겠다고 엄포 놓는 거랑 똑같죠. 영화만 퍼포먼스가 아니에요. 영화 이후의 상황도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퍼포먼스죠.”

-차기작은?

“미디어에 관련된 영화인데요. 미디어란 딱딱한 주제도 정말 재밌는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겁니다. 방송 출연하는 전문가들이 ‘진짜인가’에 대해 찍고 있어요. 의사, 점술가들 방송에 나오면 대박 치는데 출연 과정이 정말 공정하냐는 거죠. 제 의사 친구가 그렇게 말해요. 병원 홍보대행사랑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고. 과잉진료 안 하고 성실한 의사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홍보대행사 끼고 비용 지불해서 TV에 전문가로 출연해야 영업이 잘 되는 거예요. 또 극영화도 찍을 계획이에요. 내년에 촬영해서 개봉할 겁니다.”

그는 달변에다 말도 길어서, 한 가지 질문하면 대답은 세 가지쯤 한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닫힐 뻔한 엘리베이터 문을 잡더니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만담가처럼 유쾌하게 인터뷰하던 모습과 달리 엄숙한 표정이었다. “방송 환경이 달라질 수 있도록 같이 기도해 주세요.”

대전에 있는 4년제 대학 신문방송학과 학생이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아무리 잘 풀려도 (외주제작사에서 방송을) 조작하고 있을 것 같네요.” 수많은 청춘이 양심을 팔아야 살아남는 상황에 내몰리는 게 지금의 방송 구조라면서, 그는 이것이 슬픔이라 했다.

밥줄 끊길까 걱정하기 전에 내 밥그릇이 공정한 사회의 산물인가 따지고 드는 그가 때론 재수 없어 보인다. 그는 주위 사람을 불편케 하지만, 성찰하게도 한다. 그 ‘재수 없음’이 꼭 필요한 곳에 우리가 살고 있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