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입력 2011-05-12 20:18


도쿄 ‘고려박물관’ 이사장 야마다 사다

일본 도쿄 신주쿠의 한 빌딩 7층에 ‘고려박물관’이 있다. 2001년 12월 개관한 ‘박물관’이지만, 이곳에는 도자기도, 기와도, 왕관도 없다. 대신 벽마다 커다란 직사각형 액자만 가득 걸려 있고, 액자마다 글자와 사진이 빼곡하다. 모두 한국 문화재에 관한 설명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어떤 문화재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왔는지, 누가 어떻게 가져왔는지, 지금은 일본 어디에 있는지 추적해서 자세한 내막을 사진과 함께 액자에 담아 전시하고 있다.

‘한국’이 아니라 ‘고려’ 박물관인 것은 남북한을 아우르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반도가 지금은 둘로 나뉘어 있지만, 여기에 ‘전시된’ 문화재는 남북한 경계가 생기기 전의 한반도에서 유출된 것이다. 입장료 300엔(약 4000원), 하루 평균 입장객 20명. 이 작은 박물관을 10년째 지탱해준 철학은 단순하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바르게 알리고, 재일동포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일본 지식인, 시민단체와 재일동포들이 힘을 합쳐 이 박물관을 세웠다. 이사장을 맡고 있는 야마다 사다오(山田貞夫·73)씨를 9∼11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16∼28일 건국대 상허기념도서관에서 고려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전시회를 갖는다. 주제는 ‘유랑하는 문화재’. 조선왕실의궤의 귀환이 89년 만에 이뤄질 즈음이다.

-고려박물관 설립 목적은.

“일본의 조선 침략과 근대 식민지 지배의 과오를 반성하고 역사적 사실을 직시해 일본과 코리아의 화해를 지향한다. 또 재일교포의 생활과 권리 확립에 노력하고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전하며 민족 차별이 없는 공생사회 실현을 위해 설립했다.”

-‘식민지 지배의 과오’를 반성한다는 게 문화재 반환을 말하는 건가.

“우리 박물관은 문화재 반환 운동을 하는 단체가 아니다. 코리아와 일본의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알리고 문화재가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운영은 어떻게 하고, 회원은 얼마나 되나.

“박물관은 전적으로 회원 기부금과 입장료 수입으로 운영된다. 회원은 대략 850명. 재일교포와 일본인이 섞여 있다. 회비는 1년에 5000엔(약 6만6600원)이다. 기부액은 1000엔부터 10만엔, 20만엔 등 다양하다. 설립 초기엔 재일교포가 많았지만 지금은 일본인이 더 많다. 일본인은 식민지 지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박물관 운영비가 1년에 대략 100만엔인데, 회비와 기부금, 입장료 수입으로 충당된다.”

-일본인이 한국 문화재를 제자리에 돌려놓자고 하면 일본에서 오해도 많이 받을 텐데.

“회원 중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일부 관람객 중에서 ‘일본이 약탈한 문화재’라는 사진설명을 보고 식민지 시대에 가져온 게 왜 약탈이냐고 항의하는 사람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얘기한다.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에게 사들이는 것은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다, 이런 행위도 약탈에 해당된다고.”

-이런 일을 왜 하나.

“도쿄에서 도자기 판매업을 21년간 했는데 그 도자기의 기원을 따져보니 조선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다 한국 유학까지 했고 2004년 12월부터 고려박물관에서 자원봉사로 일을 시작했다. 약탈된 문화재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하지 않나.”

1939년생인 그는 일본 와세다대 법대를 졸업한 뒤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시간제 임시교사로 고교에서 4년간(1964∼68) 사회 과목을 가르쳤다. 제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은 그는 전범국가로 과거사 반성에 인색한 일본의 역사 인식에 상당한 문제의식을 가졌다. 이 때문에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고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후 가업인 도자기 판매업을 했는데 일본에서도 유명한 하기야키라는 브랜드였다. ‘하기’는 일본 혼슈 야마구치현 지명이고 ‘야키’는 도자기란 뜻이다.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 중 일부가 일본에 정착해 도자기를 굽던 곳에서 생산된 도자기를 일컫는 말이다.

-한국 유학을 했다고 들었다.

“1970년대부터 교회와 관련된 교류 때문에 한국을 방문했다. 1997년 강경숙 충북대 교수(현 중원문화재연구원장)로부터 한국 도자사 석사과정을 3년간 배웠다. 도자기 판매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 도자기에 관심이 많았다. 석사과정을 하기 전에도 매년 1∼2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그러다 도자사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충북대에 입학했다.”

야마다 이사장은 서울대에서 어학연수를 2년간 했다. 한국어가 유창하다. 당시 강 교수는 야마다 이사장에게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대학원 과정을 추천했다. 하지만 그는 강 교수의 도자사 관련 연구에 매료돼 충북대에 지원했다.

-당신이 보기에 원래 자리에 되돌려야 할 문화재로 어떤 게 있나.

“우선 ‘오쿠라 컬렉션’에 포함된 유물을 제자리에 돌려놔야 한다. 현재 도쿄 국립박물관에 있는데 여기에는 정말 중요한 문화재가 많다. 일본 중요문화재 8점, 중요미술품 31점을 포함해 모두 1110점이다. 이 중에는 매장품을 도굴한 경우도 있고…. 그 증거도 있다.”

일본 기업인 오쿠라 다케노스케가 수집한 오쿠라 컬렉션은 한반도에서 한번도 발굴된 적 없는 5∼6세기 신라 금동투각관모(金銅透刻冠帽), 한국 고대 회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청동기 시대 ‘견갑형동기’(어깨갑옷 모양의 장식판) 등 학술적 가치가 높은 국보급 유물이 즐비하다. 1982년 도쿄 국립박물관에 기증됐다고 한다. 오쿠라는 대낮에도 인부를 동원해 도굴하며, 노골적으로, 무차별적으로 한국 문화재를 수집했다고 알려져 있다.

-앞으로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언제까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몇 살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박물관 일도 자원봉사로 하고 있다. 이번에 같이 한국에 가는 일본인 27명과 삼성리움미술관, 서울대 박물관, 이화여대 박물관, 간송박물관에 들러서 도자기 등을 살펴보고 현실을 파악하려 한다. 공주와 부여도 방문할 생각이다. 올 9월에도 회원들과 함께 한국 여러 곳을 둘러볼 것이다.”

야마다 이사장을 아는 한국인은 모두 그의 열정과 냉정, 객관적 역사해석을 얘기했다. 빼앗긴 유물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주장, 이건 어찌 보면 다분히 감정적이다. 그는 “문화재는 원래 있던 자리에 있어야 가장 빛이 난다”고 말한다.

그의 대학원 동기인 박경자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은 “야마다 이사장은 소주에 삼겹살을 좋아하는 소탈한 성격에 진정성과 균형적 시각을 갖고 있다. 배울 점이 많다. 그가 대학원생일 때 탈북자를 위해 탈북자 지원단체에 기부하는 모습도 본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이 일본군을 물리친 내용을 담은 함경도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 일본으로 유출된 지 100년 만인 2005년 한국에 돌아왔고, 이듬해 3·1절에 원래 자리인 함경도 길주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고려박물관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외쳐 왔던 한국 문화재 중 하나였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현재 해외에 있다고 확인된 문화재는 20개국에 14만560점이다. 이 중 일본이 6만5331점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이 미국(3만7972점)이다. 고려박물관의 국내 전시회를 함께 기획한 신일섭 건국대 교수는 “문화재가 해외를 떠도는 건 우리의 슬픈 역사다. 제자리를 찾아줘야 하는데, 야마다씨 같은 이의 노력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