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씨네마 부산-PIFF 15년의 기록 (17)] 광견병도 못말리는 ‘부산 패밀리’

입력 2011-05-12 17:59


지난 15년, 부산국제영화제는 네트워크 구축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프로그래머들과 저는 세계를 누비며 뛰어다녔고, 아시아 젊은 감독들이 세계무대로 뻗어나가게 지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산과 인연을 맺어 부산을 사랑하는 ‘부산영화제 패밀리’가 세계 곳곳에 포진하게 됐습니다.

영국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 부산영화제 창설에 참여했고, 영화제 자문위원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원로 평론가 피엘 리시엥. 부산영화제 마니아면서 한국 영화의 로비스트입니다. 네덜란드 언론인 피터 반 뷰어렌, 핀란드 프로듀서 유니 호카넨, 탐페레단편영화제 프로그래머 시모유카 루이포는 1회부터 한 해도 거른 적 없이 부산영화제를 찾고 있습니다.

타이거클럽 멤버인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 대만 감독 허우샤오시엔, 전 로테르담영화제 집행위원장 사이먼 필드, 태국 감독 논지 니미부트르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년 부산을 찾는 열렬한 패밀리입니다. 슈 마에다 후쿠오카영화제 집행위원장과 크리스천 존 칸영화제 영화담당 책임자도 그렇습니다.

세계적 감독이 된 부산패밀리

아시아 젊은 감독을 발굴해 지원하는 일은 부산영화제의 핵심 역할입니다. 아시아 신인감독 경쟁 부문인 ‘뉴커런츠’는 많은 감독을 배출했습니다.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유키사다 이사오, 중국의 지아장커와 장밍, 대만의 장초치와 리캉센,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 홍콩의 프룻 첸과 유릭와이, 태국의 펜엑 라타나루앙, 싱가포르의 에릭 쿠와 로이스톤 탄, 인도네시아의 리리 리자, 말레이시아의 호유항과 탄추이무이, 인도의 무랄리 나이르, 아프가니스탄의 세디그 바르막…. 이들은 지금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 감독이면서 부산패밀리입니다.

자파르 파나히는 제1회 부산영화제를 찾은 뒤 부산영화제를 ‘세계 최고의 영화제‘라고 칭찬하는 대표적 감독입니다. 부산에서 영감을 얻어 두 번째 작품 ’거울‘을 완성했고, 1998년 제1회 PPP(부산프로모션플랜·현 아시아프로젝트마켓)에 출품했던 ‘순환’이 2000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오프사이드’를 제외한 자신의 모든 작품을 들고 부산을 찾았으며, 2003년 ‘뉴커런츠’ 심사위원을 맡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지난해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6년 징역과 20년 외부활동 금지 형을 선고받아 세계 영화인의 공분을 샀습니다. 올 베를린영화제 개막식에선 무대 위 빈 의자에 그의 사진을 놓고 그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하는 행사도 가졌습니다. 구속을 비난하며 석방을 기원하는 이벤트였죠. 부산영화제는 즉각 석방탄원 성명서를 발표했지만, 그는 여전히 감옥에 있습니다. 하루 빨리 석방되기를 기원합니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역시 부산패밀리입니다. 그는 만날 때마다 “부산이 나를 영화감독으로 키웠다”고 공언합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폐막영화 ‘카멜리아’ 3부작 중 ‘카모메’를 연출했고, 제가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했던 타이베이영화제에서 함께 심사를 맡기도 했습니다.

세디그 바르막 감독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와의 인연은 이란의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마흐말바프 감독은 2001년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뒤 아프가니스탄의 영화 재건을 돕는 과정에서 바르막 감독과 친구가 되어 그의 장편 데뷔작 제작을 도왔습니다.

부산영화제는 마흐말바프의 추천으로 2002년 바르막의 신작 시나리오 ‘오사마’(국내 개봉 이름은 ‘천상의 소녀’)를 PPP에 초청했고, 2003년 완성된 이 작품은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후보에 올라 ‘특별언급’에 선정됐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바르막은 부산영화제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영화 재건의 선구자이고, 부산이 미약하나마 힘을 보탠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뉴커런츠 부문을 거친 한국 감독도 적지 않습니다. 박기용 이창동 임상수 변혁 정재은 송일곤 박찬옥 김수현 노동석 이윤기 장률 조창호 윤종빈 김태식 박흥식 안슬기 윤성호 김태곤 백승빈 노경태 소상민 윤성현 박정범…. 모두 크고 작은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많은 상을 받았고, 저는 그 수상 현장에서 보람과 긍지를 갖고 지켜봤습니다.

부산영화제의 아시아영화펀드(ACF) 지원을 받은 ‘원더풀 타운’의 아딧야 아사랏 감독과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은 부산을 통해 세계에 알려진 대표적 사례입니다. 영화에 욕이 많이 나오는 ‘똥파리’는 가는 곳마다 화제를 뿌렸습니다. 라스팔마스에서 영화 상영이 끝나고 저녁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총영사 부인은 저에게 “평생 들을 욕을 두 시간 동안 다 들었다”고 말하더군요. 타이베이에서 이 영화를 본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양 감독에게 “김동호 위원장 만날 때 그 욕을 써도 되느냐”고 물어 양 감독이 기겁을 했다고 합니다.

부산패밀리가 된 세계적 감독

부산패밀리에는 거장 감독도 많습니다. 올해 부산영화제 공식 포스터의 원화를 제공해 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이란 감독은 부산을 세 번 찾았습니다. ‘체리향기’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로 우리를 열광시킨 거장이죠. 이란에선 음주가 공식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부산에 오면 가끔 술도 마시고, 좋아하는 소갈비 식당을 자주 찾습니다.

마흐말바프 감독도 부산을 자주 방문합니다. 회고전 때는 가족(부인과 2녀1남) 모두 부산을 찾았고, 한 해는 아시아영화아카데미 교장으로, 또 한 해는 영화와 함께 부산을 방문했습니다. 2003년 부산영화제는 ‘올해의 아시아인 상’을 제정하고 첫 수상자로 마흐말바프를 선정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부산에 오기 며칠 전 거리의 떠돌이 개에게 먹이를 주려다 물렸습니다. 광견병을 가진 개였고, 병원에서는 치료를 위해 부산행을 말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끝내 부산에 왔습니다. 지난 2월 몬드리안 특별전이 열린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마흐말바프 부부를 반갑게 만났습니다. 그들이 테헤란으로 돌아가면 자파르 파나히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2005년 제10회 부산영화제를 찾은 일본의 스즈키 세이준 감독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당시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와병 중에 올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산소호흡기를 부착하고 부산에 나타나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체류기간 내내 열정적인 모습으로 관객을 즐겁게 해 찬사를 받았습니다.

타이거클럽 멤버인 대만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대표적인 단골손님입니다. 2001년 심사위원장으로 부산을 처음 찾은 그는 2002년 대만 영화인들을 독려해 그 단장으로 다시 왔고, 2005년에는 개막영화 ‘쓰리 타임즈’로, 2005년과 2008년에는 아시아영화아카데미 교장으로, 2009년에는 특별한 일 없이, 2010년에는 제 퇴임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타이베이영화제와 금마장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최근 사임할 거라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감자탕과 삼계탕을 좋아해서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대만에 갈 때면 부산에서 통닭을 사 가지고 가 선물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차이밍량 감독,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 중국의 왕가위 감독도 부산영화제 마니아들입니다. 2009년 제14회 영화제에 참석한 프랑스의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과 베로니크 켈레 국립영화원장(최근 아르테방송 사장으로 옮겼습니다) 또한 부산패밀리인 동시에 제 열성 팬입니다. 파리에 들를 때면 이들과 점심이나 저녁을 함께하면서 우정을 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부산패밀리는 많습니다. 임권택 감독과 배우 안성기 강수연은 패밀리 중 성골(聖骨)에 속합니다. 첫 회부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참석했을 뿐 아니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영화제 기간 내내 머물며 영화제 일을 돕는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영화인뿐 아닙니다. 연극배우 박정자 윤석화 손숙, 피아니스트 노영심도 개근파인 동시에 ‘김동호 패밀리’입니다.

문화예술인으로 구성된 예장로타리클럽, 원로무용가 최현(작고)을 기리는 ‘허행초 모임’(역대 회장은 차범석 김수용 이종덕) 멤버들도 거의 매년 부산을 찾습니다. 특히 1회부터 15년간 폐막식에만 참석한 뒤 다음날 아침 해장국에 양주 두세병을 비우고 돌아가는 ‘목포부대’도 열성 패밀리입니다.

가구점 사장 박삼석, 2대째 ‘갑자원’ 모자(帽子)점을 운영하는 이태운, 약국 주인 김성수, 목포대학 교수 박종두, 그리고 언론인 박연호 강두모 이규섭 등 이들의 직업도 다양합니다. 국내외에서 부산영화제를 사랑하고 성원하는 ‘패밀리’가 있었기에 부산영화제의 오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