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시위에 1인은 없더라… ‘트위터 시대’ 그들이 홀로 거리에 서는 까닭

입력 2011-05-12 18:10


사흘째 서울에 비가 내렸다.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다. 빗방울 잦아든 11일을 기다려 일부러 나간 것은 ‘1인 시위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궁금하다. 소셜네트워크 시대에 왜 굳이 거리에서, 힘들게 이런 방법으로, 뭘 알리려 하는가. 우리가 출근길에 무심히 지나치는 이들은 과연 이 세상에 당당히 맞설 논리를 가졌는가.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 담벼락에 주인 잃은 ‘몸자보’가 여럿 서 있었다. 몸자보는 경찰용어다. 1인 시위자들이 끈을 매달아 목에 걸고 있는, 앞뒤로 선전문구가 빼곡히 담긴 널빤지를 가리킨다. ‘몸에 걸고 있는 대자보’라는 뜻쯤 되겠다.

‘국회는 공무원 해고자 139인의 원적 복적 특별법을 즉각 제정하라. 1인 시위 783일차.’ ‘카지노가 존재하는 한 당신의 가족도 예외일 수 없다. 카지노 특별법 즉각 폐기.’ 또 다른 문구에 눈길이 닿는 순간 노란색 3단 접이식 널빤지의 젊은 주인공이 도착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외환은행 홍대역지점 함두완(26)씨는 자신을 신입행원이라고 소개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은행에 들어와 이날 처음 1인 시위에 나왔다. 외환은행은 하나금융지주의 인수 합병을 저지하려고 전 직원이 순번을 정해 시내 곳곳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MB 빽만 믿고 버티는 김승유에게 대한민국의 정의를 가르쳐 주십시오. 외환은행 임직원 일동.’ 그가 들고 있는 문구는 과격했지만, 그의 표정은 해맑다. 대학 때 데모 한번 해본 적 없다고 했다. 은행 선배들의 배려로 그나마 지난 3월까지는 1인 시위에서 빠졌다고 한다.

그가 널빤지를 펼쳐든 옆으로 다른 몸자보가 보였다. 누군가 신호등 기둥에 세워둔 것이다. ‘음해, 모략, 기고의 달인. 참여연대를 없애버리자!’ 주위를 둘러봐도 주인을 찾을 수 없었다. 주인이 나타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다. 한국 제1호 1인 시위 주인공이 누군지 아시냐고.

저널리즘이 기억하는 국내 첫 1인 시위자는 2000년 12월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이던 윤종훈(50) 회계사다. 그는 국세청이 임대한 서울 수송동 서울종로타워 빌딩 앞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변칙증여에 대한 과세를 주장하며 1인 시위를 했다.

“국세청이 세 들었던 그 건물은 삼성생명 소유였다. 그 안에 온두라스 대사관이 있었다. 대사관 반경 100m 시위 금지 규정 때문에 고안해 낸 게 1인 시위다. 여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릴레이 1인 시위 100인을 채우기도 전에 국세청이 과세를 했다.”

1인 시위로 삼성과 국세청이란 파워집단을 굴복시킨 대가는 혹독했다. 윤 회계사는 “피켓을 든 지 일주일 만에 회계사무실 매출이 반 토막 났다. MB정부 들어서는 그나마 있던 일도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그는 회계사 일을 접고 서울 신촌에 ‘상하이짬뽕집’을 열었다.

그는 “나 이전에도 1인 시위는 많았다. 조선시대 유생들이 대궐 앞에서 상소 읽는 것도 1인 시위였다. 세력 없는 사람들, 정치적 마이너들이 그야말로 진정성을 갖고 뭔가 자기주장을 하는 것, 그게 (1인 시위의) 본질이다”라고 말했다.

점심 무렵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 노무현재단과 정치단체 ‘시민주권’ 소속 인사들이 검찰에 조현오 경찰청장 소환조사를 촉구하며 하루 한 명씩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해 12월과 지난 4월, 두 차례 여기서 1인 시위를 했다.

조 청장은 지난해 3월 강연에서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한 건 거액 차명계좌가 발견됐기 때문”이란 발언을 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검찰은 노무현재단의 수사 촉구를 반년 넘게 외면하다 수사검사가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당하자 조 청장에 대해 소환 대신 서면 조사한 사실을 공개했다. 이날 몸자보를 들고 있던 시민주권 집행위원 김창덕(47)씨에게 1인 시위에 나선 소감을 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5월 23일)가 다가온다. 제발 더 이상 그분의 죽음을 욕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 청장이 패륜적 망언을 했던 부분에 대해 빨리 유족에게 사과하고, 그에 맞는 정부 조치가 있어야 한다.”

혹시나 해서, 여기 서 있는 동안 눈을 맞추거나 몸자보에 관심을 보인 검찰 직원이 있었는지 물었다. 김씨는 “그런 분은 없다”고 했다. 짧은 질문을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그가 한마디 했다. “이상하게 왜곡돼서 (기사가) 나가는 건 아니겠죠?”

집회·시위 가운데 경찰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부분이 1인 시위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시위’의 개념을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으로…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여러 사람’은 2인 이상으로 해석되며, 1인 시위는 규제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집회·시위 단속의 총사령관인 경찰청장도 수사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경찰청 이중구 경비과장에게 전국에서 하루 평균 1인 시위가 몇 건 벌어지는지 물었다. 이 과장은 “공무원이 규제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신 ‘변종’ 1인 시위의 불법성에 대해 긴 설명을 이어갔다. 한 사람이 하고 나서 다른 사람이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시위를 이어가는 ‘릴레이 시위’, 10m씩 떨어져 한꺼번에 1인 시위를 하는 ‘인간 띠 시위’…. 질문은 “하루에 몇 건이나 1인 시위가 벌어지냐”였는데, 그는 경찰백서에나 있을 법한 얘기들을 되풀이했다.

광화문 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으로 자리를 옮겨 숭실대 총학생회장 박길용(26)씨를 만났다. 이명박 정부에 ‘반값 등록금’ 공약을 지키라는 서울지역 대학생들의 릴레이 시위다. 그는 북쪽 청와대를 등지고 남쪽 프레스센터를 향해 몸자보를 들고 있었다.

“청와대를 향해 말하는 데 지쳤습니다. 시민에게 알리는 게 더 중요합니다. 혹시 해결되지 않더라도 이슈가 되길 바라니까요.”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한 미국인 남성(41)에게 박씨가 들고 있는 문구를 설명한 뒤 물었다.

-‘대학생들의 고통을 언제까지 외면할 겁니까. 반값 등록금 실현으로 대학생을 살려 주십시오’라고 적혀있다. 이 시위를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하게 말하면, 한국은 과잉교육(over-educated)을 받는 거 같다. 모든 사람이 대학 갈 필요는 없다. 대학에 가고 싶으면 등록금이 비싸더라도 감수하고 갈 테고, 그게 반복돼 대학 등록금을 계속 높이는 거 아닌가.”

-그럼 학생들이 대학을 많이 가지 않는 게 해법일까.

“해법은 모르겠다. 흥미로운 건, 유럽에는 등록금 문제로 폭동이나 군중시위가 많지 않느냐.”

-그런데 저 학생은 혼자 시위를 하고 있다.

“맞다. 그게 인상적이다. 매우 평화로워(peaceful) 보인다.”

이날 각종 집회·시위의 ‘백화점’은 단연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이었다. 포항 주민들은 멋진 양복 차림에 어깨띠를 매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포항 유치를 주장하는 팸플릿을 나눠줬다. 옆에선 6·15 남북공동성명을 이행하라는 기자회견, 가정 과목을 전공한 교사 임용고시 준비생의 정원 확대 요구 1인 시위 등이 벌어지고 있었다.

비슷한 시각,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는 중국에서 넘어온 신흥종교 신봉자 말고는 1인 시위자를 한 명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 대통령은 15일까지 유럽을 순방 중이어서 지금 청와대에 없다. 이날은 주인 없는 청와대보다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게 훨씬 똑똑한 일이었다.

길 위에 홀로 서 있는 시위의 힘.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이렇게 정리했다.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온라인 시위도 해봤죠. 그런데 1인 시위 모습을 찍어서 트위터에 올리면 반응이 두세 배는 더 옵니다. 얼굴 맞대고 전하는 의견의 힘, 여전히 막강해요.”

경찰이 이날 언론에 제공한 ‘일일집회행사’ 자료에는 서울에서만 총 5건의 1인 시위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이 자료엔 경찰이 선별한 정보만 들어있다. 실제 벌어진 1인 시위는 더 많다. 수많은 1인 시위자 가운데 취재 대상은 처음부터 정정당당하게 이름과 나이를 밝히고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로 한정했다. 또 ‘위세를 스스로 보여 준다’는 시위의 특성상 언론에서 사진을 촬영해도 초상권 침해를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하루 동안의 1인 시위 취재에 응한 사람들에게선 한 가지 공통점이 발견됐다. 진짜로 ‘혼자’ 나와서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단체나 조직에 소속돼 있다. 내일은 다른 사람이 그 팻말을 들 테고, 지금도 누군가 옆에서 지켜봐 주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1인 시위’를 하는 ‘1인’은 찾지 못했다.

글=우성규 기자, 사진=윤여홍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