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도 가격표가 붙는다면 그건 누구의 셈법인가
입력 2011-05-12 17:50
모든 것의 가격/에두아르도 포터/김영사
모든 건 시장가격으로 환산된다. ‘생명 여성 노동 신앙 심지어 미래에도 가격이 있다’는 이 도발적 발언은 따져보면 별난 얘기가 아니다. 무언가를 얻으려면(수익) 다른 걸 포기하거나 내줘야(지불) 한다. 경제학이 말하는 기회비용이다. 인간 행위에는 그 행동이 가져올 위험과 열매를 딸 가능성을 사칙연산하는 고난도 수학이 숨겨져 있다.
불법이민의 가격은 이렇게 산출된다. 멕시코의 가장 A가 어린 두 자녀를 미국에 불법 이민시킨다고 해보자. △1500달러 안내인과 함께 하는 사막 횡단 △5000달러짜리 위조서류를 들고 검문소를 통과하는 두 가지 길 중 A는 무엇을 택할까. 선택은 사막 횡단이 주는 물리적 위협과 3500달러를 더 벌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몇 년 간의 추가 노동을 계산한 뒤 이뤄질 것이다.
생명에 붙은 가격표도 놀라운 건 아니다. 사망 보험료와 위자료, 사고보상금은 망자의 나이와 직업, 생산성에 따라 정확한 숫자로 정산된다. 죽은 이의 목숨값이다. 행복의 가격은 2000년 멕시코 북부에서 이뤄진 ‘견고한 바닥 프로젝트’를 예로 설명했다. 한 가구당 1500페소(약 16만원)를 들여 흙바닥 집에 시멘트를 깔아준 결과, 거주자의 만족도는 69% 증가했다. 행복을 3분의 2가량 높이는 데 한 집 당 16만원이 들었다면, 16만원이 이집의 행복값이다.
굳이 값을 말하기 어려운 가치에 가격을 매긴 건, 모든 선택 뒤에 숨은 경제학을 읽자는 뜻으로 짐작된다. 저자 주장대로라면 인류가 태초부터 해온 모든 선택이 실은 가격이어서, ‘가격=자본주의의 물신화’는 낡은 공격이다. 대신 가격을 따지는 경제학적 사고는 국가와 사회, 개인이 손해 보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 의사결정 수단이 된다.
그러나 책이 결정적으로 놓친 게 있다. 누구를 위한, 혹은 누구의 셈법을 따른 경제학이냐는 질문이다. 현실의 많은 경제학은 실은 정치학이다.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던 삼호주얼리호와 금미호를 비교해보면 쉽다. 영웅 석해균 선장과 무명의 금미호 선원들을 살리기 위한 정부 투자는 똑같지 않았다. 결정권자는 돌아올 정치적 소득이라는 숨은 변수를 남몰래 따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수익자의 경제학일 뿐, 제 목숨이 달린 선원들의 계산법은 아니다. 그래서 가격이 전부일 수는 없다. 뉴욕타임스 편집위원. 손민중 김홍래 옮김.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