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사계] 모란을 寫生하던 시절
입력 2011-05-11 17:41
고궁 가운데 시민들과 가장 친숙한 곳이 덕수궁이다. 도심에서 가깝거니와 소박하고 아담하다. 한나절 놀기에 알맞은 사이즈다. 입장료 1000원이니 도심의 오아시스가 멀리 있지 않다. 풍광이 정갈하고 집집이 사연이 많다. 조선과 대한제국, 대한민국이 겹치는 지점이어서 그렇다. 경내의 미술관은 쏠쏠한 눈요깃감을 준다.
덕수궁은 추억의 현장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성장기를 보낸 사람들의 특권이다. 봄 소풍에서는 그림을 그렸다. 정관헌 앞마당의 모란이 단골 소재였다. 가을이면 고목의 그루터기에서 두근두근 시를 적었다. 졸업을 앞두고 석조전 앞에서 앨범 사진을 찍었다.
지금 그곳에 모란이 활짝 피었다. 넓은 꽃잎이 피워내는 향기가 사방에 흩어지니 중년의 숙녀들이 곳곳에서 모여든다. 스케치북을 폈던 곳에서 아득히 흘러간 시간을 추상한다. 그림 속에 담았던 푸른 꿈, 원고지에 꾹꾹 심었던 옛 사랑을 그리워하며.
손수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