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진영] 저축은행과 빨간 신호등
입력 2011-05-11 17:42
“저축은행 사태의 해답은 명료하다. 신상필벌 원칙만 제대로 적용하면 된다”
부산저축은행 사태의 원인이 대주주와 경영진의 탈법·비리 경영과 금융감독 당국의 느슨한 통제 때문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원인이 분명한 만큼 재발을 막는 처방을 마련하는 일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국무총리실이 중심이 돼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사실 요란스레 떠들 것도 없이 정답은 명료하다. ‘신상필벌’의 원칙만 제대로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우선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감독 수장들을 바꿀 일이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대통령이 직접 회초리를 들고 찾아갈 정도의 사단이 났는데도 그 자리에 그냥 붙어있게 한다는 것은 당사자들을 더욱 염치없게 만드는 짓이다. ‘사태 수습이 급선무’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라는 상투적인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수습은 사고를 친 사람보다 후임자에게 맡기는 것이 오히려 적격이고, 짧은 재임기간을 이유로 든다면 임명된 지 며칠 만에 물러난 장관들도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옹색한 변명이다.
다음으로 금감원 임직원들의 급여를 대폭 삭감하자.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되고, 직장인의 가장 큰 벌은 금전적 보상의 축소다. 재산공개 대상 확대, 청렴도 평가 따위는 그들에게 큰 벌이 아니다. ‘우리가 정말 잘못하긴 했나보다’라고 느끼게 하는 데는 ‘급여 삭감’만한 충격이 없다.
감독 대상인 금융회사의 분담금으로 운영되는 금감원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한다는 사실에 허탈해하지 않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급여 구조를 바꿔 기본급은 대폭 줄이고 성과급 비율을 높여 일 잘하는 사람, 즉 ‘금융감독’ 잘하는 사람이 많은 보수를 받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질적 감독권의 상당 부분을 한국은행을 비롯해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캠코)에 넘겨주자. 감독권 분산은 금융감독체계 개선안의 정수(精髓)다. 그럼에도 금융위원장은 감독권을 나눌 수 없다고 기자들에게 확언했다. 오히려 금감원 검사인력 증원이 필요하다고 강변하는가 하면 ‘감독체계를 바꾸는 방안을 논의하다가는 답을 찾을 수 없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했다.
이른 아침, 예정에 없이 청색 점퍼 차림에 금감원을 찾은 대통령의 굳은 얼굴도 금융위원장에게는 별 위력이 없었다. 옛 재무부와 금융위 출신에 금감원을 거친 사람들의 인맥인 이른바 ‘금피아’의 돈독한 끈 앞에서는 대통령도 큰 힘이 없어 보였다. ‘MB의 결의에 둔감한 상상력의 빈곤’이란 그를 향한 비아냥도 들렸지만 확실히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사실 하나는 국민들 앞에 증명해 보였다.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같은 사안은 일련의 외과적 처방만 제대로 내려지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저축은행들이 앓고 있는 ‘숙환’이다. 특히 대형 저축은행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채권은 위험 수준이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도 따지고 보면 악성 PF 채권으로 인한 경영 악화에서 비롯됐다. 총 여신의 70%가 넘는 8700억원이 PF 대출에 묶이다 보니 회사가 정상 운영될 리 없었고, 이러니 온갖 꼼수가 동원되고 탈법 불법이 횡행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말 현재 저축은행들의 PF 대출 잔액은 12조2000억원, 연체율은 무려 25.1%에 달한다. 금융감독 당국이 정확히 밝히지 않아 어느 저축은행이 얼만큼 부실채권에 물려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부동산 경기 침체→PF 부실 심화→저축은행 경영 악화, 불법 경영→저축은행 부실 심화→영업정지, 도산→예금자 피해’라는 패턴이 반복되는 이유다.
금융 당국이 시중은행들을 압박해 부실 채권을 처리하는 ‘배드뱅크’를 운영한다고 하니 급한 불은 꺼지겠지만 속 불은 여전히 이글거리고 있다. ‘부동산 불패’를 주창하며 저축은행들의 PF 대출을 독려하고, 건설사의 돈줄을 죄지 말라고 저축은행들을 윽박지르던 금융감독 당국자들은 전국 곳곳에서 켜지는 저축은행발(發) 빨간 신호등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정진영 카피리더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