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도영] 통합과 분열의 大選 관전법
입력 2011-05-11 17:44
김영삼 정권 시절 청와대 수석을 지낸 인사가 최근 청와대 참모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 ‘진보 진영이 이기는 공식이 하나 있다. 보수 진영이 분열하고 진보 진영이 통합될 때다.’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동시에 분열하거나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모두 통합되면 보수진영이 이긴다는 뜻도 된다. 이 인사는 청와대에 “지금은 위기 상황이다. 통합의 정치를 하라”고 조언했다.
1997년과 2002년 대선 때는 이 공식이 유효했다. 이회창 후보는 97년 7월 신한국당 경선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2위였던 이인제 경기지사를 포용하는 데 실패했다. 이회창 진영과 이인제 진영의 핵심 참모들은 선거 직전까지 두 후보의 통합을 시도했으나 불발됐다. 이회창 후보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끌어안지도 못했다. 김대중 후보는 그해 10월 DJP 연합을 발표했고, 김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39만표 차로 이겼다.
이회창 후보는 2002년 ‘대세론’을 무기로 다시 대권에 도전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은 2002년 2월 이회창 총재를 ‘제왕적 총재’라고 비판하며 한나라당을 탈당했다가 대선 직전 복당했다. 이회창 총재는 그에 앞선 2000년 ‘2·28 공천파동’을 주도하며 김윤환 의원 등 거물 정치인들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노무현 후보는 2002년 11월 25일 정몽준 후보와 여론조사 단일화에 성공했다. 노무현 후보는 57만표 차로 이회창 후보에 승리했다.
15, 16대 양 대선 당시 한나라당 중진이었던 이상득 의원은 2008년 사석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두 선거 모두 이회창 후보가 질 수 없는 선거였습니다. 그러나 졌습니다. 분열했기 때문입니다. 대선과 같은 큰 선거는 통합을 해야 이깁니다.”
요즘 여권과 야권 모두 내부에서 97년과 2002년 대선의 복기(復棋)가 한창이라고 한다. 여권에서는 ‘1997년의 교훈’이 자주 거론된다. 보수정권이 집권 중이라는 점, 대세론을 형성한 후보가 있다는 점이 비슷해서다. 97년엔 이회창 후보를 중심으로 한 9룡(龍)이 있었다면, 2011년에는 독보적인 박근혜 전 대표와 나머지 군소후보들이 뛰고 있다.
15년이 지나도 여전히 97년이 복기되는 이유는 어느 한 세력도 홀로 집권할 수 없는 정치 구조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2년간 차기 대선 후보를 묻는 모든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해온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도 40%를 넘긴 적은 한 번도 없다. 20% 중반에서 30% 중반의 박스권에 갇혀 있다.
2012년 18대 대선까지는 많은 변곡점들이 있을 것이다. 지난 대선들도 그랬다. 그러나 분열을 향해 가느냐, 통합으로 나아가느냐라는 두 가지 흐름이 대세를 형성할 것이다. 대선이 1년 7개월 남은 현재 여권은 분열로, 야권은 통합으로 나아가는 듯하다.
여권은 자중지란 상태다. 이명박 대통령은 ‘원칙’과 ‘백년대계’라는 이름으로 지지세력과 불화(不和) 중이다. 한나라당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집권 기간 내내 친이계와 친박계가 나뉘어 갈등하더니 이젠 친이계도 세 조각, 네 조각으로 분화했다. 친박계라고 나은 형편이 아니다. 속사정은 알 수 없으나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세를 넓히기보다는 꽁꽁 무리지어 외벽을 높이 쌓고 있다. 친박계 좌장이라던 김무성 전 원내대표가 박 전 대표와 헤어졌고, 박 전 대표 비서실장을 지낸 진영 의원도 친박계를 떠났다.
좌충우돌하기는 야권도 마찬가지지만 2010년 지방선거와 4·27 재보선 등 큰 흐름상 점차 통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민주당 이인영 최고위원은 아무도 민주당 집권을 말하지 않던 2년 전부터 “우리가 통합을 이뤄낼 수 있다면 다음 대선은 해볼 만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지금 민주당 연대·연합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민은 분열로 나아가는 세력과 통합으로 나아가는 세력 중 어느 쪽을 지지할까. 국민의 선택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남도영 정치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