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포커페이스
입력 2011-05-11 17:41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을 포커페이스(poker face)라고 한다. 포커를 칠 때 상대방이 자신의 패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표정을 바꾸지 않는 데서 유래했다. 먼저 패를 보이는 사람은 협상 흥정 노름에서 이기기 힘들다.
포커페이스는 영화에도 종종 등장한다. 많은 사기술이 등장하는 ‘스팅’, 심리를 이용해 상대방 돈을 올인시키는 ‘지존무상’, 판돈 1억5000만 달러를 놓고 도박을 벌이는 ‘007 카지노 로얄’ 등에서는 주인공들의 포커페이스 연기가 압권이다. 특히 ‘007 카지노 로얄’에서는 동료의 배신으로 전략이 드러나자 역(逆) 포커페이스 전략을 써서 상대방을 녹다운시키는 장면도 나온다. ‘타짜’의 주인공 고니(조승우)는 걸쭉한 입담, 고도의 심리전, 포커페이스를 세트로 한 작전으로 상대방을 괴멸시킨다.
정치계에서도 포커페이스는 아주 중요하다. 유진산 신민당 총재는 알아주는 포커페이스였다. 1970년 대통령 후보가 되려고 동분서주하던 40대 3인방 김대중 김영삼 이철승은 모두 유진산의 지지가 절실했다. 60대인 유진산은 김영삼을 후보로 밀고 당권을 유지할 심산이었다. 정치감각이 뛰어난 김대중은 유진산의 의중을 간파했지만 이철승은 자신이 낙점되길 기대했다. 이철승이 백전노장 유진산의 포커페이스에 말렸다고 언론은 분석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3년 11월,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12월 각각 이라크를 방문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라크 방문 계획에 관한 한 두 정상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이들의 계획을 사전에 인지한 극소수 측근들은 입에 자물통까지 채운 포커페이스임에 틀림없다.
오사마 빈 라덴 사살작전을 지휘한 윌리엄 맥레이븐 합동특수작전사령관도 포커페이스 반열에 오를 만하다. 그는 지난달 29일 리언 패네타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부터 작전 명령을 받고 몇 시간 뒤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를 찾은 미 하원의원들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기지를 안내했다. 철통 보안을 유지한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맥레이븐보다 한 수 위다. 그는 빈 라덴 제거작전 당일인 지난 1일 군 골프장에서 9홀 플레이를 펼쳤다. 춥다고 둘러대며 후반 9홀을 중단하고 백악관 상황실로 돌아가 2시간 뒤 시작될 작전을 점검했다. 주위 시선을 따돌린 연기가 영화배우 수준이다. 작전이 진행된 40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시간이라고 했던 오바마 대통령. 그는 골프를 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