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기업들이 접대비는 펑펑

입력 2011-05-10 22:37


방송통신 관련 업체인 A사는 2009년 2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A사의 접대비는 2004년 5900만원에서 2009년 4억7900만원으로 8배 이상 뛰었다. 특히 2009년에 접대비가 급증한 것은 A사가 다른 업체를 인수하기에 앞서 각종 기관 사람들에게 접대비를 흥청망청 썼기 때문이다. 회사가 돈은 못 벌면서 접대에 모든 걸 건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기업들이 회사의 성공을 위해 오랜 시간을 들이는 연구개발 투자보다는 접대에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적자기업이나 수입이 적은 기업의 접대비가 급증하고 있다. 접대비 증가율이 한 자릿수에 머무른 우량기업과 달리 최근 4년간 수익이 마이너스인 결손기업 접대비가 70% 가까이 치솟아 기업문화 쇄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0일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기업 접대비는 2005년 5조1621억1700만원(33만3313곳)에서 2009년 7조4789억9000만원(41만9420곳)으로 45% 증가했다.

문제는 적자에 허덕이는 어려운 기업에서 접대비 지출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적자를 내는 결손법인의 접대비는 2006년 8810억9200만(11만5525곳)에서 2009년 1조4589억2600만원(14만1896곳)으로 급증했다. 4년간 결손기업 숫자의 증가(23%)에 비해 접대비 증가율(66%)이 3배에 달한다.

흑자 우량기업과 비교하면 결손기업 접대의 심각성은 한층 더하다. 2009년에 흑자 상위 10∼20% 기업의 접대비 총액은 7221억6400만원으로 같은 시기 결손기업 접대비의 절반에 그쳤다. 흑자법인 10분위 구분 방식이 도입된 2007년 이후로만 봐도 결손법인의 접대비는 3년간 53% 늘어난 반면 흑자 상위 10% 내 기업 접대비는 9.3% 증가하는 데 그쳤다.

또 총 수입규모 10억원 이하인 기업들의 접대비는 2005년에 비해 2009년 43% 늘었다. 수입이 5000억원을 넘는 대형 기업들의 접대비 증가율(67%)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연 수입 5000억원이 넘는 기업 수가 같은 기간 50% 가까이 증가한 반면 수입규모 10억원 이하 기업 수는 27% 늘어난 데 그쳤다. 기업수의 증가율을 고려하면 수입이 적어 입에 풀칠하기 바쁜 기업의 접대비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임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접대비는 단순한 술 접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경영 활동을 위해 다양한 대면접촉 활동을 포함하고 있어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관계자 역시 “최근 건전한 문화접대비가 늘면서 접대문화가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100개 기업의 회계 장부를 분석하고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전체 접대비에서 문화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9년 평균 0.57%를 차지했다. 이는 2006년 당시 접대비 내 문화 부문 비중(0.05%)보다 11배나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건호 경제정책팀장은 “기업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은 혁신경영, 기술개발, 설비투자 등이며 접대를 통해 경영실적을 높이는 것은 구시대적인 문화”라며 “적자기업조차 접대비가 늘어난 것은 우리 기업들이 외환위기 당시의 교훈들을 잊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