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 속 세상] 과거·현재 말없는 대화 도심 속 일상이 여유다
입력 2011-05-10 22:14
휴식과 추억 어우러진 북촌 이야기
바쁜 일상 속에서 뒤 돌아볼 여유도 없이 생활하는 현대인들에게 잔잔한 휴식과 여유를 주는 도심 속의 섬이 있다. 서울 중심에 자리 잡아 옛 추억과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곳. ‘대한늬우스’나 오래된 흑백사진 속에서 많이 보던 풍경이 그대로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겹겹이 기와지붕이 포개지고, 시선이 가는 곳곳마다 추억이 하나둘 포개지는 곳. 50년 전 도심의 모습을 간직한 채 중장년층에겐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그곳, 북촌(北村)이다.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의미의 북촌은 왕실의 벼슬아치들이 살던 고급 주택가였다. 1930년 일제강점기에 벼슬아치들이 떠난 이곳 한옥을 소규모 건축업자들이 함석과 유리문을 덧대 재건축을 해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북촌을 가려면 승용차는 오히려 불편한 교통수단이다. 시청 앞에서 삼청동행 마을버스를 타고 경복궁을 지나 삼청동입구에 내리면 주변 건물들이 개량한옥과 어우러져 예쁜 그림이 된다. 버스에서 내려 어느 곳에서나 셔터를 누르면 그게 바로 그림이다. 북촌을 안내하는 문화해설사 이경순씨는 “옆집과 이어지는 한옥의 처마선이 이웃과 더불어 사는 우리 정서를 잘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북촌에서 과거와 현재는 서로 ‘더부살이’ 중이다. 기와지붕 아래 함석을 덧댄 개량 한옥, 얼핏 보면 전통 찻집으로 착각할 법한 그곳에 들어가 보면 오늘 우리의 여유로운 일상이 펼쳐진다. 현대식 커피머신에서 뽑아내는 은은한 커피향이 공간을 휘감는다. 저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정겨운 이야기가 오간다. 물론 수정과, 식혜도 없는 건 아니지만 이곳에선 찻집이나 카페도 모든 게 ‘퓨전’이다.
주말엔 가족과 함께하는 나들이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북촌생활사박물관, 실크로드박물관, 부엉이박물관, 토이박물관, 세계장신구박물관…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남녀노소 모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시청 홈페이지에 북촌 체험을 신청하거나 북촌모바일 안내를 이용하면 북촌을 좀 더 자세히 경험할 수 있다.
이곳을 처음 찾는 이들부터 ‘북촌마니아’까지, 거리 곳곳마다 ‘북촌예찬’이 이어진다. 진선아(26·여)씨는 친구들과 함께 한옥을 배경으로 ‘인증샷’에 여념이 없다. 그는 “양옥과 한옥 문패, 우체통, 문고리와 디지털 번호 잠금키 등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면서 “관광객들로 붐비는 골목길의 이국적인 느낌도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한 달에 두 번, 친구들과 북촌을 찾는다는 주부 김경화(40)씨는 북촌에서 향수를 느낀다. 그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골목길 풍경에 심취하다가 커피숍에 앉아 그 시절 이야기보따리를 풀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며 미소를 짓는다.
북촌은 잠들지 않는다. 밤늦은 시간까지 일상을 벗어나 여유를 즐기려는 도시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엿장수의 가위소리, 굴뚝 청소부의 징소리, 고무줄놀이 하는 여자아이들의 구전가요를 떠올리며 오늘도 사람들은 북촌을 걷는다.
사진·글=최종학 기자 choij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