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파도치는 영성

입력 2011-05-10 17:34


빛을 가리는 어두움

사람들은 빛이라고 할 때 태양, 전기, 촛불, 반딧불, 모닥불 등의 빛을 떠올린다. 진리라는 말도 ‘옳은 도리’ 정도로 알아듣는다. 삶 속에서 인격적으로 흠이 없고, 옳은 일만 행하는 것을 진리로 이해한다. 생명이라는 말도 칠십, 팔십 년을 사는 육신의 목숨으로 생각한다.

그렇기에 자신을 빛이라고 하고(요 8:12),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을 세상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그것뿐이 아니다. 어두움의 주관자인 마귀는 ‘어두움’이라고 하는 무기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모르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어떤 존재가 되는지 모르게 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할 필요성을 모르게 하고, 매사에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영적인 유익이 무엇인지 모르도록 끝까지 가로막는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께서 말씀하신 영적 세계에서의 빛과 진리와 생명이 무엇인지 모르게 한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하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하면서 믿을 필요가 있느냐? 이 정도면 되지 않느냐?”라고 하면서 영적인 눈을 가린 채 자기 상식 위에 신앙생활을 올려놓는다.

‘어둡다’는 말은 ‘철없다’는 말과 같다. 마귀는 우리를 영적으로 철이 없는 자로 만든다. 부모가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면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살아요. 간섭하지 마세요”라고 대꾸하는 중고등부 학생들처럼 철이 없다. 부모는 자식이 성장한 후에 어떻든 먹고사는 일에 어려움이 없고, 세상에서 사는 일에 고통스럽지 않게 만들어 주고 싶은데 자식은 그 심정을 모른 채 고집부리고 철없이 행동한다.

이처럼 우리를 철없는 믿음을 가진 자로 만드는 것이 어두움 때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도와주시려고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라. 시행하리라. 믿음 안에 능치 못함이 없다.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말씀하셨어도 “그렇게 한다고 되겠어? 기도한다고 되겠어? 믿는다고 되겠어? 이 일은 안 돼”라고 단정하며 하나님을 안 믿는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실족하고 시험에 드는 것도 어두워서 그렇다. 마귀는 어두움을 이용하여 우리가 믿음에서 타락하고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지 못하게 한다. 시험하는 자, 곧 마귀에게 속으면 시험에 든다. 영적으로 어두우니까 눈으로 보이는 것만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마귀의 궤계를 알지 못한다.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면 기도할 필요성을 모르게 하는 어두움의 주관자, 마귀 역사가 뒤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도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면 한 사람이라도 지옥으로 더 데려가려는 마귀 역사가 우리를 어둡게 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면서 죄를 범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어두움 때문이다. 모두가 마귀가 주는 어두움의 손아귀에 붙들린 결과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두움에 속지 않는 것이다. 어두움의 일에 속고 나서 무엇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도 소용없다. 몰라서 그랬다고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하시고,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고 볼 수 있도록 하셨다. 목사가 설교하게 만들어서 도저히 모를 수 없도록 하신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어두움에 속지 말고, 마음을 쏟아서 신앙생활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윤석전 연세중앙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