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지진땐 마지막 실종 교민 안전 확인… ‘해외여행자 수호천사’ 영사콜센터 24시
입력 2011-05-09 18:43
외교통상부는 소말리아 해적 피랍 사건, 동일본 대지진 대응 등에서 재외국민 보호 임무를 성공리에 수행한 영사업무 담당 간부들에 대한 서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외교관은 아니지만 음지에서 이들만큼 묵묵히 일하는 20명의 ‘비정규직’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 2층 ‘영사콜센터’에서는 상담원 연상우(30)씨의 통화가 끝나자 작은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관련된 964건의 실종신고 중 마지막 964번째 신고 대상자의 안전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지진 발생 후 1주일여 동안 평소의 10배가 넘는 하루 5000여건의 상담 전화에 자장면을 시켜먹으며 밤샘 근무를 했던 어려움이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게 된 것이다.
다시 평온을 찾은 9일 오후 4시, 영사콜센터에 들어서자 ‘619콜, 응대율 99.8%’라는 전광판이 눈에 들어왔다.
5년차 최고참 상담원 유현정(32·여)씨가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2∼3일에 한 번씩 해외에 체류 중이라고 주장(?)하며 고국의 시각을 묻는 ‘몇 시예요 아저씨’의 전화를 받았단다. 유씨는 “아저씨 전화가 1주일 가까이 안 왔을 때는 상담원끼리 서로 ‘전화 받았느냐’며 안부를 걱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항공권을 구해 달라, 해외 치료비를 깎아 달라” 등 떼를 쓰는 민원인도 있지만 대부분 해외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연중무휴로 긴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담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고 한다. 2006년 개소 첫해 5만9475명이던 이용자 수도 지난해 22만7600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여권업무 등 자주 바뀌는 영사 관련 규정을 숙지해야 하기 때문에 상담원들은 근무시간 외에도 ‘공부’를 해야 한다. 매달 한 번 보는 시험에서 80점을 넘지 못하면 보충수업 선생님으로 수업을 준비하는 ‘벌’이 주어진다.
공부할 것도 많고, 월 100만원이 겨우 넘는 박봉이지만 상담원들은 해외에서 곤경에 처한 국민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는 보람이 이 직업의 매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에는 사이판으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남편이 갑자기 쓰러져 헬기로 괌까지 옮겨져 병원비가 1억원이나 나온 ‘새댁’이 울면서 전화해 왔다. 영사콜센터는 즉시 괌 하간냐 출장소에 근무하는 직원을 통해 긴급히 진료비 1억520만원을 전달했다. 해외에서 소지품 분실 등 현금이 없어 어려움에 처한 경우 재외공관을 통해 긴급하게 경비를 지원하는 신속 해외송금 지원 서비스였다.
해외여행객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자 서은혜(33·여) 상담원은 세 가지를 꼽았다. 여행 전에 영사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여행 국가의 치안 상태를 파악하고, 여권 분실에 대비해 사본을 지참할 것. 마지막으로는 대학생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여행 가서 부모님께 정기적으로 연락하세요. 여행 간 자녀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전화가 꽤 많답니다.”
해외 사건·사고에 꼭 필요한 최일선 부대지만 영사콜센터는 내년이면 얹혀살고 있는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쫓겨날 처지다. 영사콜센터 조홍주 소장은 “상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전문 상담사 양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