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6년전 문화재 거론하는 일본의 속셈
입력 2011-05-09 17:56
진통 끝에 조선왕실의궤를 돌려주기로 약속한 일본이 엉뚱한 제안을 하고 나섰다. 1990년대에 도난당한 문화재가 한국에 밀반입됐다며 우리 정부에 조사를 공식 요청했다는 것이다. 시기로 보면 한·일 도서협정 비준안이 일본 중의원을 통과한 지난달 말이다. 외무성이 자민당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형식까지 갖췄으니 다분히 의도적이다.
일본 정부가 조사를 재요청한 문화재는 안코쿠지(安國寺)가 소유했던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과 가쿠린지(鶴林寺)가 보관했던 ‘아미타 삼존도’ 불화 등이다. 일본은 1995년에도 도난당한 ‘대반야바라밀다경’이 한국에서 국보 284호로 지정한 ‘초조대장경본’과 비슷하다며 수사를 의뢰한 적이 있다.
문화재청의 해명은 당시나 지금이나 명쾌하다. 안코쿠지본은 종이를 접어 책으로 묶은 접철본(摺綴本)에 발원문이 없는 데 비해 국보 284호는 두루마리 형태의 권자본(卷子本)에다 발원문이 달려 있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아미타 삼존도’도 그렇다. 이 불화는 2002년 한국인 김모씨 등이 일본에서 훔쳐온 직후 중개상에게 넘겨졌으며 여러 단계를 거치다가 현재는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따라서 이는 민간에서 일어난 불법행위여서 민사소송 등을 통해 해결할 대상일 뿐이다. 식민시대에 공권력을 이용해 강탈한 책을 반환하는 것과는 별개다.
문제는 16년 전에 종결된 사안을 되풀이하는 일본의 속셈이다. 한번 터진 반환의 물꼬를 막기 위한 대응이거나,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돌려받을 문화재도 있다는 사실을 강조해 일방적인 가해국의 지위를 벗어나려는 의도도 읽힌다. 여기에는 조선왕실의궤를 돌려주는 것으로 문화재 반환 논의를 끝내자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시작일 뿐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대출해간 규장각 도서를 비롯해 민간이 소장 중인 약탈 문화재가 많다. 1960년 협상에서 일본은 북한 문화재라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하기도 했다. 정부는 의연한 자세로 문화재 협상에 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