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희롱 단속해야 할 경찰이 이 지경이니
입력 2011-05-09 18:01
지난해 11월 경만호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는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단 공동취재단과의 만찬에서 ‘오바마’(오빠 바라만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해)란 성희롱 건배사를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결국 그는 물의를 일으킨 점을 사과하고 부총재직에서 물러났다. 대한의사협회장인 그는 10만 의사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의사들로부터도 협회장직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경 부총재 발언을 계기로 국민들은 ‘오바마’라는 음담패설의 파괴력을 실감하게 됐다. 그런데 ‘오바마’ 망언이 경찰 내에서 또 불거졌다. 서울 강동경찰서 수사과 경찰 등 50여명이 지난달 충남 계룡산으로 야유회를 겸한 워크숍을 다녀오는 자리에서였다. 경찰 2명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바마’와 함께 연령대별로 여성을 호두 석류 등에 비유한 음담패설을 서슴지 않았다. 버스에 동승한 여경과 외부 여성 등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고 한다.
경찰청은 관리감독 책임을 물어 김모 수사과장을 대기발령하고, 성희롱 발언을 한 직원 2명을 엄중 조치한다는 입장이다. 경찰청이 익명의 진정을 접수하고 감찰 조사에 나선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통상 의도적으로 타인을 음해할 우려가 있는 익명의 진정은 조사하지 않지만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은 외부 여성의 실체, 워크숍 참석 이유, 스폰서 유무 등을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성희롱 발언과 음담패설이 경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성희롱 관련 진정은 2002년 1건에 불과했으나 2006년 107건, 2008년 151건, 지난해 336건으로 폭증했다. 신분상 불이익을 우려해 문제 삼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을 터이다. 딸이나 아내를 마음 놓고 직장에 보낼 수 있을지 우려스러울 정도다.
직장 내 성희롱은 1995년 중국 베이징 세계여성회의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유형 가운데 하나로 간주될 정도로 국제적으로도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직장을 그만두고 싶을 만큼 수치심을 느끼고 후유증도 오래 간다. 정부와 공적 조직은 말할 것도 없고 민간 조직까지 고충상담 창구를 상설 운영하고, 예방교육을 정례화하는 등 성희롱 방지에 만전을 기울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