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문일] 빈 라덴의 교훈

입력 2011-05-09 17:59


역시 휴대전화 한 통이 그의 운명을 결정했다.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의 심복 알 쿠웨이티의 전화번호를 손에 넣음으로써 비로소 목표물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움직일 수 있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프레더릭 포사이스는 2006년작 ‘아프간’을 휴대전화 감청에서부터 풀어 나간다. 런던에서 자살폭탄을 터뜨린 파키스탄 이민자의 집에서 휴대전화 구입 영수증이 발견된다. 추적한 결과 그 중 하나가 알카에다 고위층에게 선물로 보내진 것을 알았다. 이 전화는 다시 빈 라덴의 최측근에게 존경의 표시로 전달되었다.

알카에다도 휴대전화가 위험한 물건임을 알면서도 비상용으로 선호한다. 그러나 영국에서 휴대전화를 구입한 이슬람 광신도가 자기 집 책상에 영수증을 남겨둘 만큼 멍청한 줄은 몰랐을 것이다. 빈 라덴을 찾아가는 알카에다의 자금책 튜픽 알키르의 호위를 맡은 페샤와르의 한 탈레반은 어머니의 병세가 걱정되어 동생에게 휴대전화를 하려다 배터리가 방전된 것을 알았다. 그때 거실에 요인의 휴대전화가 놓인 것을 보고 별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는 번호를 누른 순간 감청 장비에 빨간 불이 켜졌다.(이창식 역, 랜덤하우스 간)

휴대전화 한 통이 운명 결정

작년 3월 서해 연평도 해역에서 천안함 사병들이 폭침 얼마 전까지 휴대전화로 가족이나 지인들과 통화 또는 문자를 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상습적인 전파 발신은 북한에 천안함 위치 추적을 가능하게 한 단서가 되었을 것이다. 전파 추적을 통해 천안함의 동선(動線) 정보를 축적하면 특정 시간에 어느 위치에 있을지 추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터이다.

북한은 이를 가상이 아니라 현실로 만들 전자전 능력을 충분히 갖추었을 것이다. 2006년 우리 군의 보고서는 ‘북한 해커 부대가 미군 태평양사령부의 지휘통제소를 마비시키고 미 본토 전산망에도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탈북자들은 북한군이 1986년부터 전자전 준비를 해 왔으며, 전자전 담당 2개 여단(1200여명)이 있고 각 군단에도 중대나 대대 규모의 전자전 조직을 운영하고 있어 총인원이 3만여명에 이른다고 전한다.

지난 3월 수도권 서북부 지역에서 위성위치정보시스템(GPS) 수신장애 현상이 일어났다. 같은 시간대에 북한 해주와 개성 지역 북한군 부대에서 강력한 통신교란 전파가 날아온 것이 포착되었다. 당시 진행되던 한·미연합훈련 키리졸브를 겨냥한 도발이었다. 작년 8월 서해안 일부 섬과 해안에서 일어난 전파 수신장애 현상은 북한이 전자전 설비를 갖춘 선박을 이용해 유사시 후방까지도 교란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지난달 일어난 농협 전산망 사고는 국가의 신경망이 얼마나 간단하게 마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국내 최악의 사이버 테러였다. 검찰 발표대로 북한 소행이라면 이는 천안함, 연평도의 뒤를 잇는 북한의 제3 도발로 규정해 분노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검찰 발표는 책임 범위를 최소한으로 좁힌 편리한 해법으로 폄하되기도 하여 그다지 존중되는 것 같지 않다. 이는 언필칭 ‘IT 강국’이라는 우리나라가 그동안 얼마나 허풍을 떨었는지 단적으로 드러낸 예다. 농협 사태 이전에도 두 차례나 디도스 공격을 당했으면서도 전자 테러를 믿지 않거나 인정하더라도 경시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

電子戰 대응 일자리 늘려라

은행뿐만 아니라 대기업들도 대체로 IT 보안을 전문 기업에 하청을 주어 관리한다. IT를 투자가 아니라 비용으로 여겨 협력업체 납품단가 깎듯 한다. 하청 기업의 생리는 노동자 임금 따먹기다. IT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박봉과 초과 근무, 노동 강도에 시달린다. 따라서 이직도 많다. 열악한 노동 조건은 책임 의식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민·관·군이 전자 테러에 좀 더 경각심을 갖고 IT 전문인력을 적극적으로 흡수한다면 보안을 강화하고 청년실업도 줄이는 일석이조(一石二鳥)가 될 것이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