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서른다섯, 그 날 밤 무슨 일이… 음악이 있는 2인극 ‘미드썸머’
입력 2011-05-09 18:05
일년 중 가장 낮이 긴 날, 하지에 어정쩡하게 끼어 있는 어느 밤에 일어난 일. 연극 ‘미드썸머(Midsummer)’는 여름 축제가 한창인 영국 에든버러의 연애 이야기이면서 일과 삶, 사랑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30대의 이야기다.
오늘이 어제 같은, 새로울 것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 두 주인공의 나이는 서른다섯. 청춘은 지나간 것 같은데 꿈을 포기하기에는 이른 나이다.
바깥에서 보이는 조건이야 어떠하든 속 빈 강정 같은 현실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고, 주인공들은 외로움에 허덕이며 겉으로만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극 중 헬레나(예지원)는 이혼전문 변호사, 밥(서범석·이석준)은 이혼한 남자다.
이들이 하짓날 에든버러의 술집에서 만나 우연히 하룻밤을 같이 보내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살아온 환경으로 보나 사회적 위치로 보나 처해 있는 상황으로 보아도 이 둘은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헬레나는 밥과의 만남을 실수쯤으로 치부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유부남 애인과의 연애는 헬레나에게 상처만 남기고, 밥과 그녀는 되풀이 만난다.
많지 않은 소품에 무대 변화도 크지 않은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배우들의 역량이었다. 두 등장인물이 주인공 밥과 헬레나는 물론, 두 사람의 모든 주변 인물들까지 연기하는 2인극이었기 때문이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무대에서 배우들은 쉴 새 없이 뛰고 노래 부르고 소리치고 옷을 갈아입으며 숨 가쁘게 움직였다. 덕분에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역동성을 유지하면서도 단순한 구도에서 오는 안정감을 무너뜨리지 않을 수 있었다.
중심이 되는 인물은 아무래도 헬레나를 맡은 예지원이었다. 일인다역의 화려한 개인기를 펼치며 그녀는 그야말로 열연했다. 이 연극을 위해 연습했다는 기타 실력도 의외의 발견이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다음 달 12일까지 공연된다. 2009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공연돼 호응을 받은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모티브로 데이빗 그레이그가 쓴 희곡을 양정웅이 연출했다. 티켓 가격은 전석 5만원.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