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17) 현대정밀 오춘길 대표
입력 2011-05-09 17:50
“이윤 사회환원 신념… 직원·이웃으로 나눔 확산”
“운영하는 회사 규모가 크고 작음을 떠나 이윤이 창출되면 일정부분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게 제 신념이자 철학입니다. 가족들도 저의 이런 생각에 흔쾌히 동의하고 있습니다.”
경남 창원시 팔용동에서 건설중장비 부품제조사인 현대정밀을 운영하는 오춘길(66) 대표는 거듭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을 강조했다.
오 대표는 1979년 현대정밀을 설립해 20년이 넘도록 회사를 운영해 왔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오 대표의 나눔도 점점 커졌다. 오 대표는 올해 초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이 됐다. 경남에서 8번째 회원이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개인의 경우 1억원, 법인은 30억원 이상을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된다. 오 대표는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아 1억5000만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정했다.
오 대표의 나눔 선행은 비단 고액 기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정에서 이웃으로, 이웃에서 직장동료에게로 단계별로 확대돼 왔다.
창원시 진북면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오 대표는 마산공고를 졸업한 뒤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 싶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갑종장교로 군 생활을 시작해 소령으로 1978년 예편하기까지 14년간 군인의 삶을 살았다.
오 대표는 “고등학교 교장선생님께서 ‘나라를 위해 일하는 군인이 되어보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 이후부터 마음속에 뜻을 품게 됐다”며 “하지만 군 생활을 하다 보니 부딪히는 부분도 있고 해서 결국 전역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군문을 떠나 사회에 나온 직후 아파트 건설 회사에 잠깐 몸을 담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고향으로 내려온 그는 기계부품제조업에 뛰어들었고 현재의 현대정밀을 일궜다.
초창기 어려움을 극복하고 회사를 정착시켰지만 오 대표가 떠맡아야 할 몫은 더욱 많아졌다. 6남매(3남3녀) 중 막내였지만 형님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가족은 물론 조카들 뒷바라지까지 책임져야 했다.
오 대표는 “당시 주변에 챙겨야 할 아이들이 워낙 많았다”며 “그래서 우선 친척을 포함한 가족을 위한 나눔부터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의 나눔 철학이 가족에서 이웃으로 향하게 된 건 아내 강여옥(62·창원 세광교회 권사)씨 덕분이었다. 강씨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조용기 원로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강씨는 “조 목사님의 세례 덕분에 회사가 이렇게 성장한 것”이라고 감사를 전했다. 오 대표도 “모든 것이 아내의 새벽기도 덕분”이라며 “만약 신앙심이 없었다면 오늘의 기업과 내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앙생활에 열심이었던 강씨는 서마산교회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15년 동안 해외 선교사 3명에게 월 10만원씩 보낸 것을 비롯, 개척교회와 미자립교회도 3곳을 선정해 매월 10만원씩 지원했다.
강씨의 이런 봉사활동은 자연스레 오 대표에게 이어졌다. “교회에도 어려운 이웃이 많다”는 이야기를 아내로부터 들은 오 대표는 이들에게도 온정의 손길을 뻗었다. 오 대표는 지금까지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에 매월 100만원씩 7년간 지원하고 있다.
다음으로 오 대표가 관심을 쏟은 곳은 현대정밀 근로자들이었다. 별도의 사장실을 두지 않고 50여평 남짓한 사무실을 직원들과 같이 쓰면서 직원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챙긴다.
오 대표는 “가족과 교회뿐 아니라 한솥밥을 먹고 있는 종업원들에게도 신경을 쓰고 있다”며 “중소기업이어서 복지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대학생 자녀는 1년에 600만원, 고등학생 자녀는 1년에 200만원씩 학자금을 5년째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정밀 종업원은 50명이고 중국 공장에는 70명이 일하고 있다.
오 대표는 “사원 자녀인 여대생이 보내온 편지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며 “학자금을 준 아버지 회사가 너무 고맙고 자랑스러워 나중에 꼭 선생님이 돼서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는 내용이었다”고 소개했다.
직원들도 이제는 오 대표의 봉사와 나눔실천에 동참하고 있다. 매년 경남 합천군 일대 원폭피해자를 방문해 청소 목욕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현대정밀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는 박모(64)씨는 오 대표가 일에서는 매우 엄격한 편이나 직원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대단하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경조사는 물론 사소한 일들까지 챙기고 애로사항을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박씨는 “사장님은 직원들의 든든한 울타리”라며 “기업을 통해 번 돈을 주변 이웃을 위해 쓴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여러 면에서 본받을 게 많다”고 말했다.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 사회가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오 대표는 “대외 활동이 많아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오 대표의 장남 정식(39)씨는 “6년 전부터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며 “어버지가 엄격하고 무섭게 보이지만 정이 많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고자 하는 부분이 존경스럽다”고 전했다. 그는 “저도 나름대로 봉사의 길을 걸을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소외된 이웃에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오 대표는 “아내와 함께 재단법인 장학회를 만들어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오 대표와 아내가 나온 고등학교에 각각 5명씩 10여명 정도 선발해 장학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어린시절 꿈의 대상이었던 육군사관학교에도 발전기금을 낼 계획이다. 오 대표는 “내가 꼭 다니고 싶었던 학교에 발전기금을 내고 싶다”며 “칠십 살 정도는 돼야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기부의 꿈을 다 이루기 위해 오늘도 작업복 차림으로 장갑을 낀 채 종업원들과 함께 일한다. 그는 “일하는 것이 취미”라며 미소를 머금었다.
창원=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