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 화랑주의 빗나간 행로

입력 2011-05-08 17:32

그림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등장하던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가 지난 주말 검찰에 구속됐다. 오리온그룹이 서울 청담동 고급 빌라를 짓는 과정에서 비자금으로 조성한 40억6000만원을 받은 뒤 미술품을 거래한 것으로 꾸며 돈세탁을 도와준 혐의(범죄수익 은닉 등)다. 여기에다 미술품을 담보로 한 횡령 혐의까지 겹쳤다. 이로써 국내 화랑의 대외 신인도가 수직으로 떨어지게 됐다.

그동안 홍 대표의 미술품 거래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듯 아슬아슬한 행보를 보였다. 지난 2008년 삼성특검 당시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행복한 눈물’의 실소유자를 놓고 논란이 일면서 조사를 받더니 지난달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인사 청탁을 위해 최욱경 화백의 ‘학동마을’을 건넸다는 의혹, 그리고 이번에 앤디 워홀의 ‘플라워’와 ‘재키’가 기업의 돈세탁 수단으로 이용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결국 신병 구속까지 왔다. 예술이 범죄에 이용된 전형이다.

1980년대 말 문을 연 서미갤러리는 현대적인 작품과 새로운 작가를 국내에 소개한 공로가 없지 않다. 화랑경영을 비즈니스 차원으로 끌어올린 역할도 있다. 그러나 국내 작가들을 키우고 우수한 전시를 기획하는 화랑의 본령에는 소홀했다. 그러면서 재벌가 여성들을 단골로 잡아 미술을 투기상품 혹은 상속의 수단으로 만드는 데 끼어들었다. 미술 진흥을 위해 사회가 마련해 준 많은 장치들을 부도덕한 목적에 쓴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는 국내 미술계에 돌아간다. 국민들은 선량한 화랑마저 탈법의 공간으로 인식한다. 평범한 컬렉터들은 어떤 세력에 의해 놀아나고 있다는 느낌까지 가진다. 그렇다고 이번 일을 홍씨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다. 많은 화랑들이 탈세와 투기의 유혹을 받고 실제로 가담하는 정황도 있다. 이런 때일수록 화랑계 스스로가 자정 노력을 기울여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술경기의 긴 빙하기를 맞을 것이다. 미술 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에 흡수돼 존재감마저 잃을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