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세원] 오늘도 그립습니다
입력 2011-05-08 17:34
무언가를 해야 하겠는데 갈 곳 잃은 발걸음처럼 마음은 서성이고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이 가득했던 날이다. 전에는 어버이날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 꽃을 달아드리는 일이 조금은 의례적이고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겨졌었는데 그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행위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이제 진빨강의 카네이션 꽃은 내게는 애잔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녹아든다.
봄날 언덕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아른아른 언제나 눈가에 어리는 두 분의 모습이 더욱 그리워지는 날. 그나마 성묘라도 다녀와야 마음 한 구석이 조금은 채워질 것 같아 서둘러 집을 나서 자유로를 따라 두 분을 모신 통일동산 공원묘지로 향했다. 임진강변의 바람이 많이 따뜻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조금씩 흐려지기 마련인데 영혼에 새겨진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두 분의 삶에 공감하는 부분도 많아지고 그리운 마음은 더욱 진해지는 것 같다. 세상사람 다 잊는다 하더라도 요람과도, 고향과도 같은 부모님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혈연의 정이란 세월의 두께만큼 더 두터워지는 것 같다.
어머니와는 여기저기 함께 다닐 기회가 많아 계절마다 추억이 있다. 차창 밖 야트막한 산에 하얀 싸리꽃과 붉은 복사꽃이 대조를 이루며 피어 있는 풍경이 아름다웠던 봄 기차여행도 근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화초 가꾸기를 즐긴 어머니는 특히 군자란을 좋아하셨는데 얼마 전 그 군자란이 진주황의 화사한 꽃을 피워 다정한 어머니의 모습이 참 많이 그리웠다.
편찮으신 외할머니를 찾아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긴 날을 두고두고 눈물을 훔치셨다. ‘그날이 마지막일 줄 알았으면…’ 하시고. 지금 내 마음이 꼭 그렇다. 위암으로 입원 중이었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사흘 전 나의 손을 꼭 붙잡고 ‘우리 천국에서 꼭 다시 만나자’고 하셨는데 결국 그 말씀이 유언이 되었다. 사랑해야 할 때와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왜 후회 없이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한때도 거르지 않고 보호막이 되어 주고 늘 다독이는 손길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던 분들이다. 삶의 중심에 언제나 자식을 품고 버겁다 아니하고 묵묵히 견뎌내신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생각하면 눈시울부터 뜨거워지는 이름이다. 육신은 비록 곁에 아니 계실지라도 아직도 내 힘의 원천이며 나를 신앙의 길로 이끄신 가장 신실한 멘토이시다.
예수님의 사랑처럼 온전한 사랑이 세상에 있다면 아마도 혼을 다해 자식에게 헌신하는 부모의 사랑일 것이다. 그 사랑에 감사드리며 늘 부족한 가운데에도 하나님 안에서 온전해 지고자 갈고 닦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천국에 계시며 내 안에도 항상 살아계신 두 분. 사진 속의 부모님 얼굴을 보면 지금도 내게 생생하게 말씀하시는 것만 같다. ‘차 조심해서 잘 갔다 와….’
김세원(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