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베드로 (6) 전도 체계적으로 배우려 신학대 입학
입력 2011-05-08 20:16
사업과 전도를 병행하며 바쁘게 지내는 내게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중국에 교회를 짓기로 서원했다가 사기를 당해 뜻을 못 이룬 것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교회를 지어 달라던 조선족 여인의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기도만 하면 북한 선교 비전이 느껴졌다. 그러나 북한과 접촉할 수 있는 창구는 전혀 없었다. 대신 조선족들은 북한에 드나들 수 있으니 그들과 연결고리를 계속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기선교 차 중국을 자주 찾았고 현지 선교사들과도 교제했다.
전도를 좀더 체계적으로 잘 하려면 신학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칼빈신학대학교에 입학했다. 사업을 하면서 공부하는 것이어서 매우 힘들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전도자로 철저히 훈련시키길 원하신다는 것을 확인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 후배 전도사가 토요일 저녁 나를 느닷없이 찾아왔다.
“형님, 전도하러 갑시다. 내가 특수 전도장소로 모실게요.”
전도에 열정이 넘치던 때라 전도란 말만 들으면 꼼짝을 못했다. 두말 않고 후배 차에 올랐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청량리 뒷골목이었다. 속칭 588로 불리는 유명한 사창가였다. 나 역시 이곳엔 처음 와 보았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후배와 나는 차 안에서 통성기도를 한 뒤 아가씨들이 있는 쇼윈도 밀집 지역으로 갔다. 붉은 등 아래 앉아 있는 아가씨들은 한결같이 날씬하고 예뻤다. 저들이 어떤 환경에서 지내다 이런 생활까지 하는지 참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후배는 미리 준비해온 빵과 함께 신앙 예화가 실린 전도신문을 아가씨들에게 건네면서 “예수 믿으세요”라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전도에 자신 있다고 했던 나였지만 이곳에선 입도 못 떼고 후배만 졸졸 따라다녔다.
“아저씨, 또 왔어요? 수고 많으시네요.”
후배는 이미 이곳에서 자주 전도를 한 듯 인사를 나누는 아가씨들도 많았다. 이런 곳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후배가 참 대단해 보였다. 청량리를 다 도는 데 정확히 1시간20분이 걸렸다.
집에 돌아와 하나님이 그곳을 알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했다. 가난한 자, 낮은 자, 천한 자의 구주로 오신 예수님이시기에 힘들고 고통 받는 이웃에게 복음이 더 퍼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 것 같았다.
매주 토요일, 후배와 청량리를 찾아 전도했다. 간식을 나눠주며 전도했는데 전도지를 받은 아가씨들이 열심히 읽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후배가 이젠 나보고 혼자 해보라고 권했다.
CCC 전도훈련 간사로, 늦은 신학공부로, 노인선교로, 사업으로 정신없이 바쁜데 어떻게 이 사역을 혼자 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결국 승낙했다. 나는 토요일에 계란 7판(210개)을 삶아 2개씩 봉투에 담아 나누며 전도했다. 때론 아내가 싼 김밥을 돌리기도 했다.
어느 날 그곳 생활 20년이 됐다는 아주머니(포주)를 만나 전도했다. 학창시절 교회를 다닌 경험이 있다고 해 그 자리에서 사영리를 전했다. 한 달 후 그분의 간증을 들었다.
“사영리를 듣고 교회 다니던 생각이 나면서 마음이 불안해졌어요. 그래서 기도원에 갔는데 그곳에서 큰 은혜를 받았지요.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것이 있다. 그곳에는 아가씨들이 도망갈까 감시하는 남자들, ‘기도’라는 청년들이 주변에서 항상 서성거렸는데 한번도 나를 제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때 훈련받은 강심장 전도 덕분에 이어지는 중국 사역도 담대히 펼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