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 성지 순례] 유관순 우물터… 100년전 烈士의 미소 보일듯
입력 2011-05-08 17:57
(10) 여성 기독교육의 산실 이화여고
이화여자고등학교는 한국 여성 신교육의 발상지 ‘이화학당’의 전신이다. 이화학당은 미국 북감리교 여선교사인 스크랜턴(Scranton M F)이 선교사업과 여성 신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해 설립을 추진했다. 1886년 5월 스크랜턴의 정동 자택에 세워졌다. 그러나 유교적 보수성이 깊이 뿌리내린 사회에서 여성 교육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서양인에 대한 배타성 때문에 학생 모집에 큰 곤란을 겪었다. 현재의 정동인 황화방(皇華坊)에서 한 명의 여학생으로 문을 열어 영어를 가르친 것이 시초가 됐다.
1887년에 명성황후로부터 ‘이화’라는 이름을 하사받아 교명을 이화학당으로 정하고, 학당장(學堂長)에 스크랜턴이 취임했다. 1904년에 중등과를 설치, 1908년 중등과 제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고등교육의 필요성이 증대해 학당장 스크랜턴은 보통과(4년), 중등과(4년), 고등과(3년) 외에 1910년 9월 대학과(4년)를 설치했다. 1914년 유치원(1913년 3월 시작했으나 교사가 없어 잠시 쉼)과 대학에 유치사범과를 더하여 국내 유일의 완전한 종합교육기관을 이루었다.
기숙사제 학교인 이화학당에 입학할 기회가 없는 더 많은 소녀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 이화부속여학교를 20여개나 세웠다. 또 초기 학생들은 졸업하면 이화에 남아 가르치거나 개인적으로 학교를 세워 이화학당의 관리 하에 운영하며 이를 ‘사립 이화학당 부속 보통여학교’라 했다.
1918년에는 고등과와 보통과가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와 이화여자보통학교로 각각 개편됐다.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는 1938년 이화고등여학교로 개칭되었다가 1946년 학제 변경에 따라 6년제 이화여자중학교로 바뀌었으며, 1950년 6월 3년제 이화여자중학교와 이화여자고등학교로 분리 개편됐다. 현재는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했다.
이화학당은 전통적으로 여성 교육이 전무하던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근대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여성의 의식을 일깨우며 다양한 사회 진출을 가능케 한 선구적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현재 이화여고 내에는 심슨기념관, 정문으로 쓰였던 사주문, 유관순 열사가 빨래하던 우물터가 남아 있다.
◇심슨기념관=이화여고에 남은 단 하나의 1910년대 건물로 2002년 2월 28일 등록문화재 제3호로 지정됐다. 처음에는 한옥 교사를 사용하다 1899년 양옥 교사인 메인 홀(Main Hall), 프라이 홀(Frey Hall) 등을 지었다. 시설의 부족을 메우려 메인 홀을 확장하고 보구여관을 교실로 개조해 사용해도 교실난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프라이 학당장은 새 건물 지을 장소를 물색하여 정동 30번지 땅을 구입했다(이곳은 장로교 언더우드 목사가 경신학교 전신인 고아원을 개설했던 곳으로 구입 시기는 1910년에서 1914년 사이). 프라이는 미국 컬럼비아 리버 지회의 홀부룩이 희사한 기금으로 1914년 기공했고, 1915년 3월 427.35㎡(129.5평)의 건물을 준공해 봉헌했다. 홀부룩의 기부금은 그의 동생 사라 심슨이 세상을 떠날 때 위탁한 것이어서 심슨기념관으로 명명했다.
심슨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세워진 벽돌조 건물로 전면의 아치창과 화강석 키 스톤(Key Stone)이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중앙에 현관과 계단실을 둔 중복도식 교실 배치다. 학교법인 사무실, 동아리실, 특별교실 등으로 활용했다. 현재 이화에 남겨진 가장 오래된 건물로 근대 문화재 건물임을 감안할 때 소실 후 증축된 부분이 본디 건물과 다르므로 전 건물을 박물관으로 한다는 조건으로 구청과 문화재청의 도움을 받아 복원공사를 하고 있다. 메인 홀은 한국전쟁 때 파괴되고 프라이 홀은 1975년 화재로 소실됐다.
◇이화학당 정문=전통 한옥의 대문 양식인 사주문으로 대문 지붕이 담장보다 높게 솟아있는 솟을대문이다. ‘사주문’이란 이름 그대로 기둥이 넷인 문을 말한다. 사각형의 화강암 초석 위에 네 개의 기둥을 세우고 뒤쪽의 기둥에 문짝을 달았다. 지붕은 가장 화려한 지붕 형식인 팔작지붕이다.
본래 이 문은 일제 때인 1923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 복원할 때 일본풍으로 양식이 크게 흐트러졌던 것을 1999년에 대들보, 망와, 상도리 등 일부 원래 부재를 재사용해 옛 모양에 가깝게 복원한 것이다. 대문 안쪽 옆에는 이러한 내력을 적은 표지판이 서 있다.
◇이화학당이 배출한 인물=이화학당의 첫 학생은 1886년 5월 스크랜턴 대부인이 아들 스크랜턴 목사(선교사, 의사) 집에 머물고 있을 때 한 관리의 소실인 김 부인이 영어를 배워 왕비의 통역관이 되려고 찾아왔다. 그러나 병이 들어 석 달 만에 학업을 중단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로 양의사가 된 박에스더(김점동)는 네 번째 학생이다. 대통령 부인 이희호, 교육에 박희진 정의숙 윤후정 이광자 이배용, 언론에 장명수 등, 정치에 정희경 김숙희 이미경 장상등, 소비자 보호에 정광모, 문화에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김홍남 등 다수의 인물을 배출했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