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슬픈 현주소] 명절·생일도 모른체… 현대판 고려장
입력 2011-05-06 18:36
시설에 버림당하는 노인들 급증
대장암 말기인 박모(63) 할머니는 6일 인천의 한 양로원에서 찾아오는 가족 없이 외롭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 할머니는 자신의 나이도 모를 정도로 뇌졸중이 심한 상태로 2002년 양로원에 왔다. 남편에게 맞아 뇌사 상태로 있다가 깨어난 할머니를 오빠가 데리고 온 것. 그러나 할머니의 아들은 한 번도 이곳을 찾아오지 않았다. 1년에 한두 번 연락이 닿던 오빠도 2009년 할머니가 대장암 판정을 받은 뒤로는 연락이 끊겼다. 할머니는 하루 간병비 7만원을 댈 수가 없어 그동안 간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양로원 김모 원장은 “지난해 병원에서 암세포가 간까지 퍼져 더 이상 치료가 힘들다는 판정을 받았다”며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장례절차를 상담할 사람도 없이 삶의 마지막을 고독하게 지내고 계시다”고 말했다.
요양원이나 양로원 등 노인복지시설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박 할머니처럼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거나 1년에 겨우 한두 번 연락이 돼 사실상 시설에 방치된 노인들이 많다. 외로운 황혼을 보내는 노인들에게 어버이날은 1년 중 가장 쓸쓸한 날이다.
인천의 C요양원에서 지내는 오모(75) 할머니는 치매 환자다. 2005년 장남이 모시고 왔지만 2009년 빚보증을 잘못 서 잠적한 뒤로는 연락이 끊겼다. 원장은 수소문 끝에 둘째 아들을 찾아 사정을 설명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시설비의 일부만 겨우 보탤 수 있다”는 답변만 들었다.
C요양원에 있는 119명의 노인 대다수는 기초생활수급자다. 또 이 가운데 4명은 자식이나 친척의 연락이 전혀 없는 무연고자다. 요양원 이모 사무국장은 “부모를 모시고 온 뒤 처음 몇 달은 생활비를 보태다 갑자기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많다”며 “‘자식들이 사는 게 힘들어서 그렇다’고 대신 변명을 해주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먹먹해진다”고 했다.
경기도 고양시 K요양원에서 지내는 김모(88) 할아버지는 2008년 딸이 모시고 왔다. 딸은 처음엔 한 달에 서너 번씩 찾아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뜸해졌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생활비도 보내지 않고 아예 발길을 끊었다. 김 할아버지는 부양능력이 있는 딸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지 못해 요양원 생활비가 750만원이나 밀려 있다. 요양원 측은 김 할아버지를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하기 위해 시와 협의할 계획이다.
경기도 안성시 S요양원 김모 원장은 “노인 9명을 모시고 생활하고 있는데 가족과 연락이 되는 노인은 거의 없다”며 “평소엔 서로 의지하며 즐겁게 지내지만 명절이나 어버이날 같은 특별한 날이 되면 많이 침울해진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노인복지시설 입소인원은 2008년 11만2064명에서 2009년 13만421명, 지난해 16만3136명으로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입주시설이 아닌 경로당을 제외한 노인시설수도 2008년 4497곳에서 2009년 5787곳, 지난해 6768곳으로 늘었다.
전웅빈 유동근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