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아가씨’의 금사향, 관절병원서 신바람 공연
입력 2011-05-06 20:10
6일 오후 서울 내발산동의 한 관절 전문병원에 과거 ‘홍콩 아가씨’를 부른 원로가수 금사향(84)씨가 떴다. 금씨는 요즘으로 치면 아이돌 가수 뺨치는 인기를 누리며 1950∼6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대스타다.
그런 그가 무대가 아니라 병원 측이 어버이날을 앞두고 환자와 지역민을 위해 마련한 효도 행사인 ‘금사향의 신바람 노래교실’에 참석한 것이다. 후배 가수 남일해씨와 함께 공연에 나선 금씨는 한창 때의 낭랑한 목소리로 흥겨운 옛 노래들을 들려줬다. 환자와 의료진 등 80여명의 관객을 추억에 젖게 하기에 충분했다. 처음엔 흥얼거리기만 하던 고령의 환자들은 차츰 시간이 지나자 합창이라도 하듯 노래를 따라 부르며 즐거워했다.
금씨가 이곳을 찾은 것은 자신에게 제2의 삶을 갖게 해준 웰튼병원 송상호 원장과의 각별한 인연 때문이다. 송 병원장은 한국가수위원회와 협력해 퇴행성관절염 등으로 고생하는 원로 가수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과 무료 수술 등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몇 년째 지속해 오고 있다. 이를 통해 수십년째 무릎 퇴행성관절염을 앓아 왔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치료받지 못했던 금씨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됐고 흔쾌히 인공관절 수술을 무료로 해준 것이다.
한국 최초 ‘하이힐 가수’였던 금씨는 하이힐을 워낙 좋아해 공연이 있을 때마다 신다보니 이미 40대에 퇴행성관절염에 걸리게 됐다고 한다. 비슷한 또래보다 상태가 심각해 지팡이를 짚고 걷거나 먼 거리는 업혀 다닐 정도였다는 것. 하지만 지인에게 사기를 당하면서 궁핍한 노후를 보내야 했다.
지난해 경기도 고양시의 한 가건물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살던 그녀의 안타까운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금씨는 당시 “정작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비 새는 가건물도, 걷기 힘든 다리도 아닌 예전처럼 자신감 있게, 당당하게 무대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 그녀에게 송 병원장은 지난해 9월 “지금보다 훨씬 더 건강한 모습으로 무대에 두 발로 서 있는 모습을 그려보라”는 말로 희망을 불어넣어줬다. 수술 후 재활에 성공한 금씨는 현재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전국을 다니며 무대에 오르고 있다.
금씨는 이날 공연 중간중간 자신의 인생역정을 풀어놓아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내고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는 “희망이라는 것은 너무나 멋있는 것인데, 나에게도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외쳤다. 공연을 지켜본 환자 박점숙(73·여)씨는 “늙고 병들어 걷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금씨의 이야기를 통해 나도 다시 튼튼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며 즐거워했다. 송 병원장은 “금씨에게 다시 노래와 무대를 찾아드렸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