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 검사·치료 왜 거부하나… “아이 건강보다 ‘인터넷 중독’ 낙인이 더 두렵다”

입력 2011-05-06 22:53


학부모들이 인터넷 중독 자녀들의 치료를 거부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낙인 효과’ 때문이다. 자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정신질환자로 인식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꾸준한 상담과 치료 없인 인터넷 중독에 빠져 있는 자녀들을 구해낼 수 없다고 조언하고 있다.

◇자녀 심각할수록 치료 기피 경향 강해=교육과학기술부는 최근 4년간 전국 24만여명의 초·중·고생 정신건강 선별검사를 실시한 결과 매년 전체 학생 중 12.0~17.0%가 2차 선별검사(심층평가)가 필요한 것으로 6일 나타났다. 그러나 2차 검사 대상자 중 매년 10% 이상이 검진을 거부했다. 이들 거부 학생 대부분이 ‘학부모의 거부’가 이유였다.

학교에서 1차 선별검사나 인터넷 중독을 별도로 진단하는 ‘K척도 검사’를 실시해 징후가 나타나면 지역 청소년상담지원센터에서 검사 결과를 토대로 학생과 부모에게 상담을 권유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상담센터에서 실시하는 상담 자체를 피한다.

특히 자녀의 인터넷 중독 상태가 심각할수록 부모가 문제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일선 정신보건센터에선 상담만으로는 치료할 수 없을 만큼 문제가 심각할 경우 학부모들에게 의학적인 진단과 약물처방을 권유하지만 이에 응하는 부모는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인터넷 중독이나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치유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과 정신과 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탓이다.

초등학교 5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정연숙(38·여)씨는 “인터넷 중독이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이 든다”며 “만약 나와 우리 아이가 그런 문제로 상담을 받게 된다면 학교나 상담센터에서 비밀이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학부모 김정원(40·여)씨는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 한때 인터넷에 몰두할 수 있지만 학년이 높아지면 덜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아이를 섣불리 정신과에 데려갈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부모들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도 ‘낙인 효과’를 두려워한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김모(13)군은 “인터넷을 많이 하긴 하지만 검사에서는 솔직하게 쓰기가 두렵다”며 “중독자라고 하면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정신병자’로 볼 것 같아 속인다”고 말했다.

상담전문가들은 “학생들이 ‘인터넷 중독자’라고 낙인찍힐까 두려워 검사를 제대로 안 하려고 한다”며 “좀 더 정밀한 검사 도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중독, 자연치유 불가능”=전문가들은 인터넷 중독은 자연치유가 거의 불가능해 꾸준한 상담과 치료가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또 상담과 약물치료를 통해 얼마든지 상태가 호전될 수 있다는 점을 부모들에게 인식시켜야 하지만 치료가 강압적으로 이뤄져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보라매 아이윌센터 박혜경 팀장은 “학부모들이 상담이나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정보 부재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라며 “심한 인터넷 중독이나 우울증은 병리적 현상이기 때문에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낫는다”고 조언했다. 그는 “병에 걸렸을 때 약을 먹지 않으면 오랜 기간 고통받는 것과 같은 측면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중앙대 심리학과 현명호 교수는 “정신치료나 심리상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모들이 피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모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으니 치료를 받으라’고 말하기보다는 상담을 통해 아이의 상태가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을 부모들이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성수 임세정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