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의 시인’ 이성선 10주기… 평론가 김윤식, 그와의 소중했던 인연을 회고하다

입력 2011-05-06 17:26


“그는 먼저 웃지도 않았고 먼저 말하지도 않았고, 잘 말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일행에서 빗나간 것도 아니었다. 늘 알맞은 자리에 있었고, 있되 고대인(古代人)처럼 있었다. 요컨대 씨는 있되 없는 것 같은 사람이었다.”

지난 4일 오후 6시, 서울 안암동 고려대 문과대 서관 132호. 문학평론가 김윤식씨가 ‘씨(氏)’라는 말로 생전에 설악의 시인으로 불린 이성선(1941∼2001)을 호명하고 있었다. ‘이성선 시인 10주기 추모 세미나 및 전집 발간 기념회’ 자리였다. 김윤식은 말을 이어나갔다.

“귀국 후 나는 씨의 주소로 갓 나온 책 한 권을 우송했다. 그 이유를 지금도 잘 알 수 없거니와 아마도 ‘있되 없는 것 같은 사람’에 대한 내 나름의 예의 갖추기에서였을 터이다. 이런 사람이라면 아무도 읽을 생각도 갖지 않는 내 글의 한 줄이라도 읽을지 모른다는 엉뚱한 느낌 탓이었을까. 예상을 깨고 혹은 예상대로 즉각 해답이 왔다.”

김씨는 이성선으로부터 받은 편지도 함께 소개했다. “아직 흰눈 가득 쌓인 설악산 아래 저의 집에 늦게 동백꽃이 피는 날, 뜻밖에도 선생님의 저서를 받았습니다. 봉을 뜯자 갑자기 한 큰 정신이 저를 후려쳤습니다. 법열 같이 번쩍하는 순간이 오고 그리고 그것을 얻은 느낌이었습니다.-1994년 2월25일 이성선 올림”

그해 1월 말 김윤식과 이성선은 북경대학 초청으로 루쉰에 대한 한중관계 세미나를 위해 19명의 일행에 섞여 중국에 건너가 있었다. 소설가 박완서 이경자 현길언, 문학평론가 김화영 최동호 등과 함께였다. 사실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김씨는 세속적 얘기라 할 소설을 대상으로 평론을 하고 있는 터여서 시를 전문적으로 읽어본 적이 거의 없었으나 여정이 북경을 거쳐 상해∼항주∼소주∼계림으로 이어지는 동안 이성선이라는 존재에 대해 재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성선에게서 편지를 받은 김윤식은 “모른 척하거나 먼 훗날 길가에서라도 만나면 할 말을 이렇게 즉각적으로 토해내다니. 나는 내 경솔함에 심히 부끄러웠다”라고 탄식하며 “그로부터 수 개월이 지나 이성선이 시집 ‘벌레시인’을 보내왔을 때 그 속에서 ‘이탈’이란 시 한 편을 찾아냈다”고 털어놓았다.

김윤식은 이성선의 ‘이탈’이란 시를 인용하는 것은 자신의 부끄러움 정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편지와 작품 사이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뜻밖에 선생의 저서를 받았다. 겨울을 헤매어 눈 맞으며 먼 곳을 나를 찾아온 괴물. 다른 것은 다 두절되었는데 그대 어찌 왔는가. 눈을 털고 봉을 뜯자 한기에 깡말라 버린 고봉의 정신 하나가 갑자기 끈을 풀고 벌떡 일어나 내 무방비의 따귀를 후려친다. 너 여기서 놀아라. 나갈 생각 말 것. 번개 속에 귀신 더불어 천둥 벼락 혼과 설악골에 살아라. 그 속에 침묵할 것. 위험 속에 몸을 던질 것. 마지막까지 실패하여 최후에 꽃잎 같은 피노을 한 장 덮고 죽을 것.”(시 ‘이탈’ 일부)

김윤식에게 보낸 편지를 기초로 하여 씌여진 시가 ‘이탈’이다. 그럼에도 시에는 김윤식이라는 고유명사가 완전히 빠진 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어 있다. 시 ‘이탈’에 그려진 ‘괴물’이라거나 ‘큰 새’라거나 하는 단어에서 김윤식을 떠올릴만한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저 겨울의 정신처럼 차갑게 홀로 눈을 맞고 있는 시인이 이성선이었다.

김윤식 또한 자신의 이미지가 시 속에 들어있음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이 시를 읽으면서도 지금껏 단 한번도 나와 연관짓지 않았다”며 시치미를 뗐다.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96년 8월8일 김윤식은 초청 강사 자격으로 강원도 인제군 소재 만해시인학교를 찾는다. 당시 시인학교장을 맡고 있던 이성선은 그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넙죽 바닥에 엎디어 큰 절을 올렸다. 김씨 역시 몸 둘 바를 모른 채 엉거주춤 맞절을 하면서 다시 한번 시 ‘이탈’의 한 구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것은 다 두절되었는데 그대 어찌 왔는가.”

자신보다 고작(?) 5살 연하인 이성선이 시 ‘이탈’에서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이번엔 아예 방바닥에 엎드려 예를 갖춘 두 번의 큰 절 앞에서 김윤식은 죽은 자가 산자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김윤식의 회고에 의해 시인 이성선을 우리가 새삼 기억한다는 의미는 부끄러움의 재인식에 다름 아닌 것이다. 중국 여행을 통해 처음으로 옷깃을 스친 서로 간의 인상기는 이렇듯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문학을 매개로 하는 인생 미담이 아니고 무엇이랴.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