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기독교 윤리란 무엇인가
입력 2011-05-06 17:40
상황윤리와 아가페 사랑
기독인은 아가페 사랑의 관점에서 도덕적 규범(norm)을 지켜야 한다. 규범으로서 십계명을 준수해야 한다. 예컨대 부모를 공경해야 하며,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계명들은 도덕적 행위를 결단하는 데 있어서 강제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렇듯 규범윤리는 선악이나 옳고 그름을 결정할 경우 주어진 상황(situation)과는 상관없이 규범과의 일치냐 불일치냐를 문제 삼는다. 칸트의 윤리학은 이런 규범윤리 범주에 들어간다. 행위자는 선의지에 의해 도덕 행위 준칙을 무조건적으로 따를 의무가 있다.
그러나 상황이 행위 판단의 한 요소로 들어오면 그동안 견지되던 규범이 흔들리게 된다. 상황에 따라서 규범의 타당성이 부분적으로 혹은 전적으로 상실된다. 전쟁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선 때로 살인, 간음과 도둑질 등이 허용된다. 상황윤리는 상황에 따라 규범이 갖는 의의를 제고하게 된다. 이렇듯 상황윤리는 규범을 예외 상황에 따라 적용하기 때문에 불법이나 범법 행위가 용인되는 경우도 있다.
상황윤리는 1960년대 중반에 제기되어 7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 기독교윤리학의 지배적 사조가 되었다. 대표적인 학자는 조지프 플레처(J Fletcher)로, 그는 66년 ‘상황윤리(Situation Ethics)’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규범윤리가 갖는 화석화된 계율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생동하는 기독교윤리를 정초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윤리가 갖는 문제점은 순간적 상황에 지나칠 정도로 치중해 규범이 갖는 윤리적 기능을 무력화했다는 데 있다. 그의 상황 개념은 너무나 협소하고 제한적이다. 일반적이고 지속적인 사회 상황을 철저히 간과했다. 상황윤리가 도덕률을 폐기한다는 의구심을 갖도록 했다.
그렇다고 플레처가 모든 규범을 상황에 상대화시킨 것은 아니다. 아가페 사랑만을 유일의 절대적 규범으로 간주했고, 여타 다른 규범들에 대해선 상대적 타당성을 부여했다. 그는 사랑이야말로 특수한 상황에 적합한 결단을 내리도록 하는 유일한 규범이라고 설파했다. 개인이 처한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상황에서 기존의 제반 도덕적 규범 위반을 허용했다. 독일 나치수용소에서의 불가피한 간음, 전쟁터에서의 적군 살해, 강간으로 인한 태아의 낙태, 극한 빈곤에 쫓긴 도둑질 등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상황윤리는 사랑의 관점에서 극한 상황의 비도덕적 행위를 용납하게 한다. 그러나 동일한 상황에서도 여타 규범이 무시되지 않고 사랑의 실현은 가능하다. 드문 경우이지만, 강간당한 임신부가 낙태시키지 않고 낳아 기를 수 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처럼 자기 두 아들을 죽인 적군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을 수 있다. 상황윤리는 사랑의 미명 하에 제 규범을 전적으로 상대화시키지 못하는 허점을 안고 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는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정죄하여 돌로 치지 않았다. 예수는 사랑으로 간음죄를 용서하였지만, 그렇다고 죄 자체를 폐기시킨 것은 아니었다.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했다. 아가페 사랑은 아무리 불가피한 상황일지라도 제 규범의 폐기가 아닌 창조적 완성을 이루는 것이다.
강병오 교수 (서울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