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촌’ 김학수 화백 소천 2주년 기념예배… “그리스도의 신앙관으로 살아간 성자”

입력 2011-05-06 16:52


[미션라이프] “이제는 천국에서 사모님과 함께 계시지요? 남겨진 저희는 선생님이 영 그립습니다!”

역사풍속화와 성화(聖畵) 분야의 거장이었던 고 혜촌 김학수(1918~2009) 화백이 소천한지 꼭 2년이 되는 6일 오후, 서울 저동의 한 식당에서 2주기 기념예배가 열렸다. 유가족과 친척을 제외하면 15명 남짓 참석했는데 그 면면이 놀랍다. 백낙환 인제대·백병원 이사장, 윤병상 연세대 명예교수, 이승만 미국장로교회(PCUSA) 전 총회장, 이승규 롯데상사 대표이사, 차인태 경기대 교수(전 아나운서) 등인 것. 이들은 김 화백과의 추억을 나누며 “그분은 우리 모두의 스승이셨다”고 입을 모았다.

백 이사장은 김 화백을 ‘고결한 인격자’라고 칭했다. “그림 속에 수십 명의 사람이 있으면 그 표정이 다 달라요. 평소에 모든 사람을 사랑했기에 그렇게 그릴 수 있었던 것이지요.”

김 화백의 60년 지기 차영민 전 병원장의 아내 신정희 영락교회 권사와 아들 차 교수는 청빈한 삶과 효심을 회상했다. “평양에서 울타리도 대문도 없는 방 두 칸 초가집에서 살면서도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극진하게 모셨고, 훗날 유명해지신 뒤에도 투철한 신앙관으로 검소한 삶을 고집하셨습니다.”

윤 교수는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김 화백을 “모든 유혹을 신앙으로 이기고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신앙관으로 살아간 성자였다”고 평가했다.

1930~1940년대 평양 성화신학교 교수를 지낸 김 화백은 6·25 직후 남한에서 만난 제자 40여명을 데리고 살며 생활과 학업을 돕기도 했다. 당시 8년간 함께 살았던 이 전 대표이사는 “그 분의 삶과 신앙은 모든 제자들에게 평생 등불이 됐다”고 전했다.

역시 성화신학교 제자로 수십 번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김 화백의 가족을 돌봐 온 이 전 총회장은 “선생님은 늘 ‘하나님께서 내게 전력을 다해 그림을 그리라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하셨나보다’라고 하셨다”면서 “고난을 승리로 바꾸는 삶을 사신 분”이라고 말했다.

인제대 김학수기념박물관장 박재섭 교수는 “평생 성실하게 작업에 매진하신 것은 당신의 그림이 후세에 ‘한국이 어떻게 고난의 역사를 딛고 슬기롭게 지혜롭게 살아왔는가’를 알리는 데 사용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는 특별히 김 화백이 북에 두고 왔던 둘째 딸로 2009년 탈북한 김민정(65)씨와 그 자녀들이 참석했다. 장례식 다음날에야 도착해 끝내 아버지를 만나보지 못했던 김씨는 참석자들의 증언을 담담하게 들은 뒤 “이제야 아버지가 생생하게 느껴진다”라며 “후손들이 아버지의 고결한 삶과 뜻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생전에 ‘한국 최고의 역사풍속화가’라는 칭호를 받았던 김 화백은 한강 1300리를 40년간 350m에 그린 ‘한강전도’, 한국 기독교사 연작 66점, 조선 토속적 마을을 배경으로 성서를 재해석한 ‘예수의 생애’ 연작 30여점 등으로 알려졌고 작품 대부분은 인제대, 연세대, 경민대 등에 기증돼 상설 전시되고 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황세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