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령대기 본부대사가 도대체 뭐기에… 별 하는 일 없이 고액연봉 ‘꼬박꼬박’

입력 2011-05-06 00:10


#1. C 전 대사는 지난해 1월 29일 본부대기 발령을 받은 이후 현재까지 한 번도 보직을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1년3개월여 동안 그는 1억원 넘는 급여를 챙겼다. K 전 대사도 지난해 8월 3일부터 아무런 임무도 수행하지 않은 채 매달 꼬박꼬박 봉급을 받고 있다.

#2. 지난 2일 오후 4시30분 서울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 4층. 복도 양측에 위치한 본부대사 집무실은 불이 꺼진 채 텅 비어 있었다. 이날 오전 미국 정부가 오사마 빈 라덴 사살을 발표하면서 외교통상부는 본부 및 전 해외 공관에 비상경계령을 내린 상황이었지만 근무시간 정위치에 있는 본부대사는 23명 중 단 1명뿐이었다. 본부대사는 보직 없는 고위외교관을 위해 외교부에만 있는 자리로 타 부처로 치면 본부대기자들이다.

해마다 수십 명의 고위 외교관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 이상 유휴인력으로 있으면서 수십억원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

다음 인사 때 공관장으로 차출될 대기인력이 필요한 외교부의 특성도 있지만 1년 넘게 수십명의 고액 연봉자를 놀리는 것은 외교부 인사 시스템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전체 47개 중앙행정기관 1510명의 고위공무원 중 무보직자는 55명.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인 32명이 외교부 소속이다. 5일 현재도 무보직 고위 외교관은 28명이다. 이 중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 파견 등 임시 임무를 부여받은 고위 외교관은 단 7명뿐이다. 또 7명 중 1명은 공직활동과 상관없는 사립대 겸임교수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22명이 ‘무늬만’ 외교관인 셈이다.

‘노는’ 고위 외교관 과다 문제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07년 11월 정부는 공관장을 지낸 외교관은 보직 없이도 1년간 근무할 수 있는 대명(待命)퇴직제를 폐지했다. 보직 없이 대기기간이 1년이 가까워질 경우 일정한 보직을 줘 퇴출을 막는 식으로 외교부가 대명퇴직제를 악용하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대명퇴직제가 폐지되면서 오히려 1년 넘게 무보직 상태인데도 퇴출되지 않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감사원도 지난해 8월 외교부 감사보고서에서 “해외공관 실무 인력은 부족한데 고위 외무공무원 34명이 본부에서 무보직 상태”라고 지적하며 외교부 장관에게 본부 초과 고위 외무공무원을 재외공관에 배치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지만 지금까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일반 부처의 고위공무원(1~3급)은 행안부가 고위공무원단으로 관리하지만 외교부는 고위외교관(외교부 자체 직급 10~13급)을 사실상 자체적으로 관리하면서 ‘제 식구 감싸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외교부 인사규정에는 고위외교관을 본인 동의 하에 공관장이 아닌 참사관급 직위에 임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내부 반발 등을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외교부는 대신 지난 2월 이들을 민간기업 자문역으로 위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확정된 사례는 단 1건도 없는 실정이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무보직 고위공무원 28명 중 명예퇴직 절차 진행자 등을 뺀 순수한 무보직자는 9명”이라고 해명했다.

이성규 이도경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