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빈 라덴 사살] 이슬람권 反美 불 지필 우려… 사진 공개 안한다
입력 2011-05-05 18:16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사마 빈 라덴의 시신 사진을 공개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사살 작전 이후 미국 내 일각에선 빈 라덴이 죽었다는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의문을 제기했고, 정치권 일부에서도 시신 사진 공개를 요구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녹화한 CBS 방송의 대담 프로그램 ‘60분’에서 “빈 라덴을 사살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알카에다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빈 라덴이 죽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며 유전자(DNA) 테스트와 안면 인식(facial recognition) 조사를 실시했다고 전했다.
그는 “어떤 증거를 제시해도 사망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며 “분명한 것은 빈 라덴이 다시는 지구상에서 걸어 다니는 걸 보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정보당국자들과의 협의 끝에 결정했다고 언급하면서 “그들 모두 동의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이 사진 비공개 결정을 한 이유는 무엇보다 처참한 얼굴 사진이 이슬람권의 반미 감정에 불을 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은 사람의 생생한 사진이 폭력을 선동하거나 선전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이 사진을 승리의 전리품으로 내세우지 않을 것”이라면서 “사진들의 생생함을 감안한다면 공개는 국가안보에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도 “이런 이미지들이 반미 감정을 부르는 아이콘이 되게 할 수는 없다”면서 작전 상황이나 수장 등을 촬영한 비디오 영상물도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진 공개 여부와 관련해 정치권은 찬반으로 갈렸다. 의회 지도부는 주로 오바마 대통령 결정을 지지했다. 공화당 소속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마이크 로저스 하원 정보위원장, 민주당의 스테니 호이어 하원 원내총무 등은 해외주둔 미군의 안전을 고려해 “비공개는 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저스 위원장은 “알카에다가 미군 지도자를 살해한 뒤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했을 때 우리 국민이 보일 반응을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는 트위터를 통해 “미국을 파괴하려는 다른 이들에 대한 경고로 사진을 공개하라”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우유부단하다고 비판했다. 시신 사진을 봤다는 색스비 챔블리스 상원의원(공화)은 “그 사진들은 결국은 공개될 것”이라며 조속한 공개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봤다는 사진은 가짜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일부 언론들이 보도했다.
한편 카니 대변인은 비무장 사살과 관련된 일부 비판에 대해 “이번 작전은 완벽하게 교전법규에 맞게 진행됐고, 특수부대가 빈 라덴을 구금할 준비도 돼 있었다”며 합법적이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또 “특수부대 요원들은 그가 항복하지 않을 경우 사살 권한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