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여성들이 왜 일터를 떠나나?
입력 2011-05-05 17:37
성의 패러독스 / 수전 핀커 / 숲속여우비
16년차 컴퓨터과학과 여성교수가 있다. 그녀의 삶은 완벽해보였다. 똑똑한 그녀는 맡은 일이라면 뭐든 해냈다. 연구실적은 충분했다. 경제력이 있으니 육아와 가사노동도 걱정 없었다. 동료의 지루한 논문을 읽다 곯아떨어진 어느 날. 그녀는 사직서를 냈다. 12년간 하루 14시간씩 맹렬히 일한 회사법 소송 전문변호사 샌드러. 지적이고 야심만만했던 40대의 그녀는 커리어의 정점에서 회사를 떠났다. 80만 달러(약8억5000만원)의 연봉과 가족의 기대, 황당해하는 남자동료들. 모두 던져버렸다.
만약 30년 전이었다면, 답은 쉬웠을 것이다. ‘남성문화’라는 적대적 정글 속에서 똑똑한 여성은 미움 받고 밀려났으니까. 지금이라면? 적어도 서구사회에서 여자이기 때문에 금지된 일은 드물다. 성공을 차버린 여성들도 ‘자발적 선택’이라고 했다. 왜 이제 와서, 모든 것이 한결 수월해진 지금, 유능한 여자들은 성공의 대열에서 이탈하는가. 일터로부터 도망가는가.
미국의 경우,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돼왔던 이공계 관련 직종에 진출한 여성이 다른 분야로 전업하는 비율은 남성의 2.8배나 된다. 노동시장을 완전히 이탈하는 경우도 남자의 13배에 이른다. MBA(경영학석사)를 딴 여성 3명 중 1명은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20명 중 1명인 남성의 6∼7배에 달하는 숫자다. 양육과 가사가 해결됐을 때조차 여자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발달심리학자 수전 핀커가 쓴 ‘성의 패러독스’의 질문은 여기서 시작한다. 더 많이, 더 오래,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일한 끝에 성공을 쟁취한 여자들. 재기 넘치고 사교적이며 성실했던 엘리트 여성들. 동등한 기회를 달라며 싸워온 페미니즘 운동의 가장 큰 수혜자. 그들이 고액연봉과 권력을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는 데는 이유가 있는 듯했다.
저자는 생물학을 의심했다. 여성은 혹 선천적으로 다른 걸 원하도록 태어난 게 아닐까. 모든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졌을 때 여성은 남성과 동일한 선택을 하는가. 남녀가 다른 선택을 한다면, 그건 차별의 결과인가. 페미니즘은 ‘그렇다’고 믿어왔지만, 저자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만약 남녀가 같은 걸 원한다면, 기회가 동일할 때 모든 건 반반이 돼야 맞다. 수학 물리학 컴퓨터공학 전공자의 성비는 정확히 50대 50이어야 한다. 건설업과 우주개발 해양공학자의 절반은 여자로 채워져야 한다.
현실은 페미니즘의 기대와 다르게 흘렀다. 부유한 국가일수록 남녀가 선택하는 학문들 간 차이는 더 크게 벌어졌다. 캐나다 독일 등에서 물리학자의 5%가 여성인 반면, 러시아 필리핀 터키 등에서는 30%가 넘는다. 제도적 차별이 사라졌을 때,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법으로 보호받았을 때 여성은 더욱 ‘여성스러운’ 선택으로 돌아갔다.
만약 80만 달러 연봉을 걷어찬 게 선택이었다면, 그게 실패의 증거가 될 이유는 없었다. 영리한 여자들은 실패해서 떠난 게 아니었다. 성공했기 때문에 떠날 용기를 낸 것이다. 물론 그들이 돌아간 곳이 부엌은 아니었다. 외과 대신 가정의학과를, 우주공학 대신 사회복지를 선택했다. 컴퓨터공학이나 회사법 소송을 떠나 교사 상담사 같은 직업에 안착했다. 모두 사람과 함께 일하고 사람을 돕는 일이었다. 지위는 낮고 보수는 박했다. 아쉽지만 불행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었다.
거꾸로 저자는 남녀가 가고 있는 각기 다른 길이 차별의 결과가 아니라 여성운동이 이룬 눈부신 성과라고 말했다. 1,2세대 페미니즘이 기회의 평등을 만들어냈다면, 포스트 페미니즘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자율적 여성을 만들어냈다.
물론 생물학적 차이를 후천적 환경과 분리해내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인정받는 여성의 38%가 승진을 거절한다는 통계를 보자. 남자는 승진제의를 받으면 의기양해진다. “좋았어!” 주먹을 허공에 날리지만, 여자는 어리둥절해한다. “저요? 진짜 저 말인가요?” 남성은 50%를 알면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할 수 없을 때조차 그렇다. 여성은 100%를 알아도 망설인다. 극단적인 자기불신이다. 이건 생물학의 장난인가. 사회적 기대의 산물인가.
사회적 차이를 생물학으로만 설명하는 저자의 방식에 불편해할 여성독자도 많을 것 같다. 처음 번역을 의뢰했던 여성학자는 ‘책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러나 이제 답변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여성학이 머뭇대는 사이, 생물학과 심리학은 남녀간 차이를 꾸준히 확인해왔다. 과학이 증명한 증거들이 부인할 수 없는 수준으로 쌓인 지금. 이제 고민은 여성학계로 넘어왔다. 하정희 옮김.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