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어머니들의 사랑
입력 2011-05-05 17:39
양반 문중이나 마을에서 못된 짓을 한 사람을 멍석에 말아 놓고 뭇매를 가하는 사형(私刑)을 멍석말이라고 불렀다. 멍석말이를 당하면 속으로 곯기는 해도 겉으로는 심한 상처를 입지 않았다.
때리는 사람과 맞는 사람의 체면을 생각하고 맞는 사람이 노동력을 잃지 않게 하려고 멍석말이를 했다는 해석도 있다. 경상 전라 지역에서는 덕석말이라고 했다. 멍석말이는 종종 역사소설에 등장한다. 벽초 홍명희의 역사소설 ‘임꺽정’에도 나온다. “어렸을 때부터 맷집 좋기로 남에게 둘째 안 갈 사람이지만, 멍석말이 매 맞기는 이때가 평생 처음일세.”
SBS 주말 드라마 ‘신기생뎐’에 현대판 멍석말이 장면이 나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손님과는 연애하지 않는다’는 기생집 부용각의 규율을 어긴 기생이 모포에 말린 채 매를 맞는 모습이다. 현행법상 불법인 사적 형벌 장면을 보고 네티즌들은 제작진을 거세게 비판했다.
아들 도벽증을 고쳐준 모정
어머니로부터 사실상의 멍석말이를 당한 아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최근 참석한 친척의 조촐한 고희연에서 들은 이야기다. 연회 주인공의 막내아들이 겪은 일이다. 초등학생 때 그에게는 도벽이 있었다. 연필 지우개 칼 자 등 급우들의 학용품을 슬쩍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추궁하면 친구들의 선물이라고 둘러댔다. 그는 구멍가게에서 눈깔사탕도 훔쳤다. 어머니는 막내아들을 호되게 꾸짖었지만 그때뿐이었다. 파출소 앞까지 끌고 간 것만 서너 번이나 됐다. 파출소 앞에서는 싹싹 빌었지만 돌아서면 그만이었다.
어머니는 중대 결단을 내렸다. 막내아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사고, 마대를 준비했다. 마대 안에 들어가면 과자를 준다고 제안했다. 긴가민가하면서도 과자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그는 마대 속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마대 깊숙이 과자를 넣어주고 재빨리 마대 입구를 묶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거야, 이 녀석아.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으니 엄마도 어쩔 수가 없다.”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울면서 사정없이 회초리를 내리쳤다. ‘마대말이’는 한동안 이어졌다. 마대에 갇힌 공포에다 매질까지 가해지자 막내아들은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 엄마. 제발 살려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수차례 다짐을 받은 어머니는 막내아들을 마대에서 꺼내 가슴에 안았다.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모자가 함께 울었다.
막내아들의 도벽은 그날 이후로 없어졌단다. 그는 마대말이의 아픔과 교훈을 또렷이 기억했지만 어머니는 기억이 희미한 모양이었다. 형과 누나들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했다. “엄마, 정말 고마워요. 사람 구실을 하게 길러주셔서.” 막내아들이 어머니 손을 꼭 쥐자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어머니의 사랑과 진심이 30년 전의 어린 아들에게 통했던 것이다.
긍정의 힘을 강조하는 모성
미국 언론이 지난달 20일 보도한 에밀리 페넬의 사연은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으리라. 5년 전 교통사고로 오른손을 잃은 페넬은 죽은 사람의 손을 기증받아 이식수술에 성공했다. 20대 ‘싱글 맘’인 페넬은 평생 면역 억제제를 먹어야 한다. “딸을 양손으로 안고 돌보기 위해 이식수술을 받았어요.” 딸에 대한 사랑을 이보다 더 감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최근 중국을 울린 정판옌(鄭潘燕·29)씨의 ‘재활 모정’도 눈물겹다. 백혈병에 걸린 아들이 오염물질이 들어 있는 주사를 맞고 하반신이 마비되는 의료사고를 당했다. 주변에서는 치료를 포기하도록 권유했다. 아마 많은 이들은 절망하고 세상을 증오했을 터이다. 그러나 정씨는 달랐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착해. 다른 이들을 돕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 정씨는 재활치료 중인 아들이 세상을 비관할까봐 긍정과 사랑의 힘을 강조한다. 어머니들의 사랑은 위대하고 가없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