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머런 영국 총리 “완전히 새 됐어∼”

입력 2011-05-05 19:22


스마트폰 게임 ‘앵그리 버드’에 빠져 … 세계적 인기 비결은 ‘응징’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TV토크쇼 진행자 코넌 오브라이언(48)은 ‘이것’을 “핀란드 사람이 인류에 기여한 가장 큰 공헌”이라고 농담했다. 그는 이것의 모형을 만들어 토크쇼에 들고 나와 시청자와 즐기기도 했다.

2010년 아카데미영화제 여우조연상 후보였던 배우 안나 켄드릭(25)은 이것의 중독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레벨별로 모두 별이 3개다. 얼마나 많이 했는지…역겨울 정도다. 이걸 끊기 위해 치료를 받을까 생각도 해봤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아이패드에 이걸 깔아놓고 틈날 때마다 즐기는 열혈 팬이다. 미국 민주당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은 지난 2월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 만찬장에서 기자들로부터 정치인 중 이것을 가장 잘하는 ‘챔피언’으로 인정받았다.

대학생 박효진(24)씨. 등하굣길 지하철에서 이걸 20분가량 즐긴다. 요즘은 좀 뜸해졌지만 하루 종일 붙잡고 있을 때도 있었다.

국적과 직업과 세대와 성별을 뛰어넘어 이들을 매료시킨 이것은 스마트폰용 모바일게임 ‘앵그리 버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화난 새’. 2009년 12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항구도시 에스푸에서 탄생했다. 헬싱키 공대를 졸업한 피터 베스터바카(43)를 비롯해 4명이 로비오란 회사를 차려서 6개월간 작업해 만들어냈다.

게임의 줄거리는 성난 빨간 새가 알을 훔쳐간 돼지를 공격해 복수한다는 것이다. 악당 돼지 캐릭터는 당시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 신종 플루에서 착안했다(신종 플루는 처음엔 돼지독감이라 불렸다). 게임 방법은 간단하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해 새를 고무줄 새총에 장전한 뒤 유리, 나무, 돌 같은 방어벽 뒤에 숨은 돼지를 맞히면 된다.

10만 유로(약 1억6000만원), 비교적 싸게 개발된 앵그리 버드는 애플 앱 스토어에 등록되자마자 미국, 영국, 캐나다,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유·무료(유료는 0.99달러) 버전, 구글 안드로이드마켓과 PC 버전을 합쳐 올 3월까지 1억건 이상 다운로드됐다. 유료 버전 매출액만 800만 달러에 광고수입도 월 1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애플은 지난해 앵그리 버드를 ‘올해의 앱’으로 뽑았고, 지금도 67개국에서 유료 앱 판매량 1위를 지키고 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 최근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 회사 CEO(최고경영자) 피터 베스터바카를 포함시켰다.

앵그리 버드는 캐릭터 산업, 영화는 물론 정치 풍자 영역에까지 진출했다. 캐릭터 인형은 온라인쇼핑몰에서 14.99달러에 팔린다. 서울 명동에도 관광객을 겨냥한 ‘짝퉁’ 앵그리 버드 인형이 등장했다. 영화제작사 폭스는 지난달 앵그리 버드를 소재로 한 3D 애니메이션 ‘리오’를 개봉해 한때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의 민주화 혁명을 풍자하는 데도 앵그리 버드가 등장한다.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이나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를 탐욕스런 돼지에 비유한 풍자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단순한 새총 게임이 어떻게 세계인들을 매일 2억분(약 330만 시간)씩 이 게임에 매달리게 했을까. 전문가들은 단순한 게임 방식과 인간 심리를 이용한 음향효과를 성공요인으로 꼽는다.

손가락만 이용하면서도 방어벽 뒤에 숨어 안전 모자를 착용한 돼지를 물리치려면 방어벽이 어떻게 부서지는지, 어떤 각도로 새총을 발사해야 하는지 여러모로 따져봐야 한다.

돼지를 박살냈을 때 들려오는 축하 음악은 묘한 쾌감을 준다. 공격에 실패했을 때 돼지가 내는 소리는 은근히 승부욕을 자극한다. 복수심에 흥분한 새소리, 공격을 피하려는 돼지의 절규, 방어벽이 부서질 때 나는 생생한 효과음도 모두 영화에서 사용되는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게임이라면 남부럽지 않은 강국인 우리나라 업체들은 앵그리 버드에 어떻게 맞서고 있을까. 한국게임산업진흥원이 지난해 발간한 게임백서에 따르면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규모는 2009년 2608억원, 2010년 2759억원이었다. 올해는 3090억원으로 성장하리라 예상된다. 국산 모바일게임 ‘에어 펭귄’은 지난달 말 미국 앱 스토어에서 앵그리 버드를 제치고 2주 동안 유료게임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에어 펭귄을 만든 게임빌의 김영식 홍보팀 과장은 “앵그리 버드는 사용자의 미세한 손가락 감각이 게임 결과에 반영되게 했고, 끊임없는 업데이트로 관심을 유지해 성공했다”며 “한국은 게임 강국이지만 이런 게임이 나올 만큼 모바일게임 산업의 토양이 비옥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앵그리 버드는 국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마켓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게임물 사전심의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외국 업체들이 한국 시장을 포기하면서 한국 게임이 세계적인 게임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성장할 장이 마련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