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48분만에 비준안 처리…몸 싸움·고성 오가

입력 2011-05-05 00:49


여야가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국회에서 합의 처리하는 데 결국 실패했다. 한나라당의 단독 표결에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은 불참했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물리적 저지를 시도했다. 대한민국 국회의 구태가 다시 한번 드러난 순간이었다.

◇48분간 진행된 단독처리=여야 대치가 이어지면서 오후 3시로 예정됐던 본회의는 오후 10시가 돼서야 열렸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한나라당 의원들과 함께 비준동의안을 단독 처리하는 동안 본회의장에서는 고성과 몸싸움이 오갔다.

본회의 시작과 동시에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권영길 강기갑 곽정숙 홍희덕 김선동 의원,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 등은 ‘한·EU FTA 반대’라고 적힌 피켓 들고 의장석 점거농성을 벌이다가 국회 경위들에 의해 의장석에서 끌어내려졌다. 이를 지켜보던 자유선진당 조순형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들을 향해 “단상에 있는 분들을 여러분이 설득해야 하지 않느냐. 이게 뭡니까”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항의 표시로 아예 본회의장에 들어오지 않았다.

또 선진당 권선택 원내대표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한나라당은 불법적인 수단으로 국가 중대사인 한·EU FTA를 처리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자, 여당 의원들은 “뭐가 불법이냐”고 반발했다. 이에 권 원내대표는 “조용히 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반대 토론에 나선 이정희 대표와 강기갑 의원이 토론시간을 넘기며 계속 재협상을 요구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그만 내려오라”고 고함을 쳤다. 반면 찬성토론에 나선 한나라당 이군현 원내수석부대표는 “합의를 파기한 민주당의 자세는 여·야·정 대타협정신을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소인배적 행동”이라며 “소속 의원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는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의 무능한 리더십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박 의장은 반대토론과 소란이 계속되자 10시45분쯤 토론 종결을 위한 표결을 선언했고, 야당 의원들은 의장석으로 몰려와 “발언기회를 달라” “또 날치기하는 것이냐. 의장답게 처신하라”고 거칠게 항의했다. 이에 질세라 박 의장은 “법대로 하는 것”이라며 강행했고, 3분 뒤 비준동의안 가결을 선포했다.

◇“양보할 만큼 했다” vs “집권여당 자격 없다”=한나라당은 오후 2시부터 의원총회를 열어 비준동의안 처리 방안을 논의했다. 민주당에 양보할 만큼 양보했으니 강행 처리하자는 반응이 다수였다. 출국차 공항으로 가던 의원들까지 국회로 불러들이며 의지를 다졌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원내대표가 호출해서 (강원도) 원주에서 강연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140㎞로 밟고 왔다”고 말했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도 표결에 동참했다. 여당 일부 초선의원들은 ‘민주당은 합의를 지켜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본회의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김용태 의원은 “어린이날을 앞두고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말자”고 했다.

반면 민주당은 오전부터 오후 10시까지 세 차례 의총을 열어 릴레이 토론을 벌였다. 본회의 불참을 결정하는 데 총 8시30분이 소요됐다. 손 대표는 “(비준동의안 처리를) 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합의안을 무조건 부인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잠정발효일까지 좀 더 진지하게 하자는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그것도 못 참는다면 집권여당 자격이 없다”고 바판했다.

한편 국회 외교통상통일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2008년 12월 18일 해머·전기톱 등이 동원된 폭력사태 끝에 상정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번역 오류 등의 이유로 2년4개월 만에 철회했다.

김원철 유성열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