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 (木) 복음의 다음 세대를 품는 성도
입력 2011-05-04 19:05
찬송 : ‘예수 사랑하심을’ 563장(통 411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19장 13~15절
말씀 : 소파 방정환 선생이 일제 강점기에 민족혼을 불어넣기 위해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면서부터 우여곡절을 겪은 다음 5월 5일이 ‘어린이날’로 제정되었습니다. 미래의 기둥인 연약한 어린이들이 날개를 활짝 펴고 힘차게 비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어른들의 몫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 두드러진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어린아이와 관련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나라는 물론 모든 문화권의 공통적인 현상으로서 여성과 더불어 어린이는 대표적인 소외계층이었습니다. 성경에도 어린아이와 여성은 숫자에 포함되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런 때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하나님 나라의 계승자로 인정하신 것은 독특한 일입니다.
첫째, 우리는 복음의 다음 세대를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왔다’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존경했으며 그의 은혜와 축복을 귀하게 여겼다는 증거입니다. 안수하는 것은 특히 아버지가 자식에게 축복해 줄 때 사용한 의식으로, 안수는 권능과 권위가 수반된 사랑과 친밀감의 표시이자 축복에 대한 효력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주님께 맡기고, 또 그들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감화를 받도록 기도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복음의 다음 세대를 귀찮게 여기고 꾸짖으면 희망이 사라집니다.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간청하는 자체를 하찮은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지 않은 제자들의 시각으로는 어린아이들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요한 사역의 방해꾼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일의 효율성에 매이게 되면 주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여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부모를 따라 온 순진한 아이들은 엄격하게 통제된 신앙의 높은 벽을 보고 실망할 뿐입니다. 그들은 어른 중심의 잘못된 잣대 때문에 무한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질 기회마저 놓치게 됩니다.
셋째, 예수님은 복음의 다음 세대를 기꺼이 품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는 말씀과 함께 그들을 안수해주셨습니다. 주님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의 믿음을 염두에 두셨고, 그들이 데리고 온 자녀들도 천국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주께로 나아오는 것을 용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안수하신 것은 인격적이면서도 능동적인 자세로 그들을 받아들이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다음 세대를 품기 위해 그들의 자격과 권위와 가치를 인정하고 저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할 때 희망찬 내일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기도 :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어린아이들까지도 주께 나아오는 것을 용납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복음의 다음 세대를 주께로 인도하는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이에스더 목사<요나3일영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