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재정 건전성’… 지역구 관리에 ‘곳간’만 축낸다

입력 2011-05-03 22:16


지난달 임시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때 아닌 청탁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 10월 환노위 소속 이사철 한나라당 의원 등 10명의 의원이 발의한 ‘자연보호운동조직육성 법률안’ 때문이었다. 자연환경보전단체에 국가 보조금을 주고, 조세 감면 혜택까지 주자는 내용의 이 법안이 ‘자연보호중앙연맹’이라는 단체를 특정하고 있었던 것. 결국 다른 단체와의 형평성 문제 등이 거론되면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국가 재정 문제가 언급되면 정부는 물론 정치권도 입을 모아 ‘건전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자신의 지역구와 연계되거나 국민 여론에 편승하는 사안이 걸리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조세특례제한법을 이용한 선심성 세금감면은 단골 메뉴다. 3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8대 국회에서 발의된 조세특례제한법은 모두 272건에 달한다. 17대 4년간 발의된 것(166건)보다 이미 63.8%나 늘어난 상태다. 제주도 말 사업자를 대상으로 세액을 감면해주는 법안(김우남 민주당 의원)부터 경로당 운영을 위해 개설한 계좌에 대한 비과세 법안(김광림 한나라당 의원) 등까지 누가 봐도 특정 계층을 겨냥했음이 분명한 법안이 수두룩하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된 비과세 감면 조치 등은 ‘한시적’이라는 말이 무색해진 상태다. 1982년 처음 도입된 임시투자세액공제는 재계반발을 의식한 국회 논리에 해마다 연장됐다. 2008년 도입된 택시 유류세 감면안도 마찬가지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한 번 (특례에) 포함되면 해당 이해관계자들을 등에 업은 정치권 논리 때문에 다시 없애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감면된 조세감면액은 지난해 30조1396억원에 이른다. 2000년 13조2824억원보다 126.9% 급증했다. 같은 기간 국세 수입은 92조9405억원에서 175조125억원으로 88.3% 증가해 조세감면액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했다.

농민 표를 겨냥한 국회의원들의 ‘선심성 정책’엔 여야가 따로 없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축산농 폐업 시 목장지 양도소득세 면제안과 농가소득보전 범위 확대안이 그 예다. 한·미 FTA 체결 등에 따라 이미 축산농가에 9조원가량 지원하기로 한 데 이어 한·EU FTA 체결로 2조원을 추가 지원키로 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국회 주장에 정부는 두 손을 들었다. 2008년 18대 국회가 시작된 이래 쌀 직불금 등의 내용을 정하고 있는 ‘쌀 소득 등 보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15건이 발의됐다.

국회의원 본연의 의무인 입법 활동 자체는 사실 권장할 일이다.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이뤄진 국가 재정을 자기 지역구 등 자신의 이익과 연계하거나 여론에 편승해 마치 자기 돈인 양 ‘선심’을 써대는 데 있다. 현실성 없는 줄 알면서도 일단 법안을 내고 보는 ‘실적주의’나 동료 의원이 낸 법에 대해 내용도 제대로 안 보고 동의해주는 ‘입법 품앗이’ 등도 문제다. 법안이 남발되면서 국가 재정이나 법안의 필요성 등에 대한 합리적이고 심도 있는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아예 국회 전문위원이 법안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저지되는 경우도 많다”면서 “국회 입법권이 점차 강화되는 상황에서 의원들의 책임 있는 판단과 활동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조민영 노용택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