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해외 영토 넓힌다] 공산국가에 ‘증시제도 이식’ 자본주의 꽃 피게 돕는다
입력 2011-05-03 22:13
(16) 라오스에 한국형 증권거래소 수출
지난달 28일 오후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위치한 라오스증권거래소(LSX). 이곳에 파견 근무 중인 한국거래소(KRX) 직원들은 영자지 비엔티안타임스 경제면 톱기사를 읽고 깜짝 놀랐다.
LSX에 첫 상장된 대표 기업 라오스국영전력공사(EDL-GEN)의 올 회계연도 상반기 전력생산이 188% 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을 놀라게 한 것은 경영성과가 아니었다. 이처럼 중요한 사실이 공시되지 않고 언론에 보도되면 ‘불성실 공시’로 처벌돼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 직원들을 더 당황케 한 것은 “상부에 보고해야 하므로 정식 공문을 보내야 한다”는 EDL-GEN의 답변이었다. 이에 이 회사에 직접 찾아가 공시의 중요성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문희태 상장공시부장은 “라오스가 자본주의 체제에 익숙지 않아 이런 일들이 수시로 벌어진다”면서 “1950∼60년대 초창기 우리 증시수준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KRX는 지난 1월 신흥시장 선점과 국제 금융력 제고를 위해 베트남 증시에 차세대 시스템을 구축한 데 이어 라오스에 처음으로 한국형 증권거래소를 탄생시켰다. 그로부터 4개월이 다 돼가지만 지난달 28일 발생한 EDL-GEN의 해프닝처럼 아직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하지만 라오스 증시의 발전 잠재성은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외국자본유치와 금융시장 개방 의욕이 하늘을 찌른다. 라오스 정부는 라오스중앙은행(BOL)에 근무 중인 해외 유학파 출신 고급인력들을 전진 배치시켰다. 수폰 퐁싱 분탄(25)씨의 경우 베트남 다낭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3년전부터 BOL에 근무하다 거래소 경영지원부에 배속됐다. 그는 월급이 얼마인지 묻자 “BOL의 2배 정도로 다른 옛 동료들도 거래소 취업을 부러워한다”고 자랑했다.
라오스 정부의 적극성은 지난달 27일 출범 1주년을 맞은 증권감독원 원장을 전격 경질하면서 미국 유학파 출신 40대 여성인 바사나 CV(42)를 새 원장에 임명하는 ‘깜짝 인사’를 단행한 데서도 읽을 수 있다.
한국거래소의 역할은 단순한 합작파트너 수준을 뛰어넘는다. 한국의 증시제도를 이곳에 이식시키기 위해 수시로 증감원 정례회의에 참석해 개혁안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것은 예사다. 지난달 28일 열린 회의에서도 외국기업 상장 허용안을 놓고 씨름을 벌였다.
LSX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직원들은 박호정 부이사장을 비롯해 6명으로 IT교육부, 시장운영 감시부, 상장공시부, 청산·결제·예탁부 등 핵심부서에서 라오스 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다. 문서 및 보고서 양식 작성법은 물론이고 경제부처 공무원, 증감원 및 증권사 직원들에게 거래소 4층에 교육실을 별도로 마련해 훈련시키고 있다.
현재 상장 종목은 EDL-GEN과 국영상업은행(BCEL) 두 곳뿐이다. 증권사도 태국계 BCEL-KT증권과 베트남계인 란쌍 증권 2곳이 진출해 있다. 아직은 평일 오전 10시와 11시 30분 두 차례만 동시호가 방식으로 거래하지만 투자자들 사이에 두 상장사 인기는 대단하다. EDL-GEN의 현 주가는 6600낍(940원) 수준으로 공모가 4300낍(614원)에 비해 53.5%나 뛰었다. 개설된 증권계좌 6400여개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들이 1000여명이나 된다. 개장 시간이 너무 짧다는 불만에서부터 EDL-GEN에만 허용된 외국인투자를 BCEL에도 적용해 달라는 요구도 빗발치고 있다.
지난달 28일 만난 시사바트 티라봉 EDL-GEN 최고경영자는 “상장후 효과는 자본을 많이 끌어들인 것”이라며 “증자를 위해 미국에서 로드쇼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LSX엔 체결방식부터 주문횟수 및 외국인 한도관리, 상하한가 제도, 투자자보호제도 등 현재 한국에서 운용중인 증권거래시스템이 고스란이 복제돼 있다. 와라폰 위분타나락 BCEL-KT증권 관리국장은 “태국 증시와 시스템은 다르지만 증권사와 투자자들이 접근하기에 편하도록 돼 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시스템이 같다 보니 한국 증권사들의 진출준비도 한창이다. 진출 성사단계인 IBK증권을 비롯해 동양·한국투자·동부증권 등이 영업인가를 타진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고 돌아갔다. 라오스 정부는 “한국 증권사영업 인가약속을 해줬는데 신청서를 왜 내지 않고 있느냐”고 채근하고 있다고 한다.
KRX의 라오스 진출은 동남아에서 ‘증시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최빈국인 라오스가 증시를 개장하자 같은 인도차이나반도 국가인 베트남, 캄보디아 등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당초 라오스보다 먼저 한국형 거래소 설치를 준비하던 캄보디아 정부는 부랴부랴 개장날짜를 오는 11월 11일로 잡았다. 일본 다이와증권을 통해 장외시장만 운영중인 미얀마는 증시 구축협의를 위해 KRX를 초청했다.
KRX의 금융 영토확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3일 필리핀과 시장감시시스템 구축 계약을 체결한데 이어 아르헨티나 페루 카자흐스탄 등 동유럽 등으로도 시스템이 수출될 전망이다.
비엔티안=이동훈 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