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K리그 무패행진… 상주 상무 이수철 감독

입력 2011-05-03 21:45


김정우 골잡이 변신 대성공… “킬러 본능 알아챘죠”

상주 상무 이수철(45) 감독은 지난 2월 24일 프로축구 K리그 개막을 앞둔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김정우의 변신을 예고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던 김정우를 공격수가 부족한 상무의 스트라이커로 뛰게 하겠다는 이 감독의 선언은 신선하긴 했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이 감독은 “지난해 K리그 득점왕 유병수에 비해 김정우가 뒤지는 것은 없다. 높이에서도 그렇고 스피드와 활동량에서도 분명히 앞선다”며 신뢰를 나타냈지만 ‘골잡이 김정우’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해보였다.

두 달여가 지난 지금 골잡이 김정우는 신선함을 넘어선 놀라움을 주고 있다. 정규리그에서 무려 7골을 기록하며 선배 이동국(6골)을 제치고 득점 1위에 올라 있다.

상주는 정규리그 팀 성적도 무패행진을 이어가며 3위에 올라 있다. 상주는 지난달 30일 강호 수원 삼성을 1대 0으로 꺾은 것을 비롯해 정규리그 8경기에서 4승 4무(승점 16점)로 1위 포항(승점 18점)과 함께 패배를 기록하지 않은 팀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15년 간 코치로 활약하다 상무 사령탑에 오른 이 감독을 지난달 28일 상주 시민운동장에서 만났다.

올 시즌 골잡이로 변신한 김정우에 대한 생각부터 물었다. 이 감독은 상무 지휘봉을 잡기 전인 지난 시즌부터 김정우의 공격 본능을 알아보고 이에 대한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이강두 감독이 작전을 지시한뒤 시합직전 내가 결정권자는 아니었지만 김정우를 따로 불렀어요. ‘넌 공격력이 있으니까 경기 중간에 벤치를 쳐다보면 올라가라는 신호를 주겠다’고 말했었죠”

김정우가 득점 1위를 기록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골잡이 김정우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스트라이커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전역 이후까지 김정우가 지금의 자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이 감독은 이와 관련해 김정우가 계속 골잡이로 남아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김정우는 지금까지 소속팀에서든 대표팀에서든 조연으로서 이름을 날렸지만 김정우 한 명을 놓고 이렇게 조명을 받은 적은 없었어요. 기동력이나 몸싸움 능력 같은 것을 봤을 때 분명히 통할 선수입니다. 김정우 축구 인생 후반부는 골잡이로 생활했으면 좋겠어요”

K리그가 8라운드를 거치며 각 구단의 전력이 어느 정도 노출돼 상위권 팀에 대한 다른 구단의 경계가 심해지고 있다. 상무 역시 지난달 2일 제주전을 시작으로 정규리그 3경기에서 연속 무승부를 기록했다. 다소 주춤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이 감독은 전술 변화를 통해 무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김정우를 원래 자리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리는 대신 기회가 있을 때 2선에서 침투하도록 주문해 전남에 1대 0으로 승리했다. 이어진 30일 수원전에서는 김정우가 경고 누적으로 뛰지 못하고 이 감독 역시 전남전 퇴장으로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지만 고차원의 결승골에 힘입어 1대 0으로 이겼다. 하지만 이 감독은 군대라는 특수성이 후반기 성적의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초반에는 어느 정도 하고 있지만 부상과 경고 누적이 제일 걱정돼요. 특히 9월에 김정우를 포함한 20명이 전역하는데, 빠지는 포지션에 대체 선수를 찾는 것이 시급합니다. 5월부터는 대체 선수를 테스트 하면서 전체적인 밸런스를 조율할 생각입니다”

이 감독은 축구팬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때 날리던 선수였다. 대구 청구고 3학년 때 주장을 맡아 출전할 수 있었던 3개 전국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다. 특히 1984년 대통령금배 결승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을 넣으며 대회 최우수선수(MVP)에도 선정됐다. 서울의 유명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이어졌지만 고등학교 때 지도했던 은사의 뜻에 따라 영남대로 진학했다.

“영남대로 진학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지도했던 감독님의 뜻을 어길 수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내가 영남대에 진학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지 영대(嶺大) 갔다고 말하면 연대(延大)갔다고 알아듣곤 했습니다”

본인의 희망과 다른 길을 선택한 이 감독은 2학년 때까지 방황을 거듭했다. 3학년 때부터 마음을 다잡고 다시 운동을 시작해 졸업할 때는 당시 김호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울산 현대에 1순위로 지명되며 선수로서 입지를 다지는 듯했지만 감독들과 번번이 마찰을 빚었다. 숙소 생활 문제로 김호 감독과 충돌한 것을 비롯해 J리그 출범 전이던 일본으로의 진출 문제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후임 차범근 감독과도 잦은 불화를 일으켰다.

“감독이 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참 후회스러워요. 선수가 감독에게 반기를 든다는 건 선수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만약 2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정말 축구에 미쳐서 생활할 텐데 이젠 늦었죠”

이 감독은 선수생활의 아쉬움을 지도자 생활에서 달래고 있다. 한번쯤 거쳐 가야 하는 군부대 팀이긴 하지만 상무에 오는 선수 한명 한명에게 축구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한다. “무명이던 선수가 제대할 때 괜찮은 팀에 입단하거나 연봉 적게 받던 선수들이 인상된 연봉을 받고 계약을 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도 상무에 있을 대 지금보다 나은 축구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나가라고 늘 말해줍니다”

상주=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