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은행직원이 없네?… ‘무인 뱅크시대’ 열리나

입력 2011-05-02 18:25


커다란 터치스크린 아래 놓여진 키보드에 이상한 작은 홈이 달려 있다. 공인인증서를 저장한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꽂을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다. 벽에 설치된 대형 터치 패널을 건드리자 현재 주식시장 상황이 전체 화면으로 펼쳐졌다. 화면을 누를 때마다 환율, 금리, 심지어는 동네 지역정보가 대형 화면에 번갈아 나타났다 사라졌다.

2일 오후 찾은 서울 신정6동에 위치한 한국씨티은행 목동지점에는 평소 은행에서 보기 힘든 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이른바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스마트뱅크’. 진보한 정보통신(IT) 기술을 바탕으로 향후 직원 없이 고객이 모든 업무를 볼 수 있는 무인(無人) 점포를 위한 ‘모델하우스’ 격의 시설이다.

스마트뱅크는 백화점 쇼핑을 생각하면 간단하다. 고객이 지점에 들어가 각종 금융상품을 살피고 펀드를 사고판다.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만 직원을 불러 상담하면 된다. 은행 문턱을 낮추고 IT 기술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겨냥한 마케팅 전략이다. 실제 글로벌 은행들은 IT 기술과 은행 업무를 접목시킨 플래그십(flagship·주력상품) 점포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IT 기반 점포 러시=스마트뱅크는 우리나라에서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SC제일은행이 제일 먼저 지난해 강남역에 ‘최첨단 브랜치(지점)’ 1곳을 연 데 이어 올해 익스프레스 뱅킹센터 2곳을 열었다. 이들 지점은 특정 고객이 지점에 들어서면 자동으로 담당 직원에게 연락이 가는 ‘태그(Tag)’ 시설이나 상품 설명을 본사 직원에게 직접 들을 수 있는 화상채팅 시스템 등을 구축해두고 있다. 대기석에 앉아 번호표만 바라봐야 하는 구세대 점포와는 완전히 차별화된 전략이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 2월 목동 지점을 시작으로 압구정로데오 지점과 방배서리풀 지점을 차례로 열었다.

하영구 한국씨티금융지주 회장 겸 한국씨티은행장은 지난 2월 연내에 소규모 무인점포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스마트뱅크를 더욱 발전시켜 아예 직원 없이 고객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지점을 만들겠다는 의미다.

◇갈 길 먼 ‘무인 뱅크’=그러나 무인 뱅크로 가는 길은 매우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평일 지점을 찾는 고객의 대부분은 중·장년층이 많아 IT기기를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다. 이날 목동 지점에서도 대부분의 IT기기는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대다수 고객들은 대기석에 앉아 번호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직원 없이 거래 가능한 상품도 계좌이체, 펀드 가입 등 인터넷 뱅킹에서 이미 서비스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복잡한 은행 거래의 경우 대부분 개인 정보가 광범위하게 활용될 뿐더러 금융 전산망을 외부에 오픈할 경우 해킹 등의 우려도 제기되기 때문이다. 일반 시중은행이 필요성은 인식해도 본격 도입에 머뭇거리는 이유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당장의 효과보다는 금융 고객의 IT 기술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스마트뱅크의 위력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