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암 환우 ‘찢긴 마음’ 치유하는 劇이 있다

입력 2011-05-02 18:07


2일 오후 서울 이대목동병원 대회의실. 연극 무대가 아닌 병원에서 40∼50대 여성 암 환자 10여명이 대본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항암 치료 후 듬성듬성 빠진 머리카락이 다 자라지 않은 이들도 눈에 띄었다. 연극의 큰 줄거리는 말기 암 환자들이 주로 가는 시골의 한 요양원에서 요양 중인 환자와 수해로 모든 것을 잃고 요양원에 피신한 사람들의 얘기다. “오늘 퇴원하는 환자 역할인데, 감정과 표정이 영 안 사네요. 어쩌죠?”

쏟아지는 질문에 연극 연출가 양승한씨는 맡은 배역별로 발성부터 감정 표현까지 꼼꼼히 지도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게 서툰 암 환자들도 진짜 연극배우가 된 것처럼 열정을 쏟아냈다.

이 프로그램은 ‘김갑수의 연극교실’이다. 상처받은 암 환자들의 마음 치료를 위해 병원과 여성환경연대가 함께 마련한 것으로, 인기배우 김갑수씨가 흔쾌히 받아들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김씨 외에 연극 연출가 양승한씨와 심리치료 전문가 최철환씨가 암 환자들을 위해 그들의 재능을 나눠주기로 했다.

이들은 6월 중순까지 매주 한 차례씩 돌아가며 암 환자들의 연극 연습을 지도하고 심리 상담도 병행할 예정이다. 상황극을 통해 환자들의 정서를 치유하는 프로그램은 많지만 이처럼 유명배우가 직접 참여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드라마 치료는 드라마(연극)를 통해 환자들이 ‘평소 해보지 못했던 역할’을 해 봄으로써 쌓아둔 감정들을 쏟아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다. 지난달 29일에는 김갑수씨가 직접 연기 지도에 나섰다.

연극 교실에 참여한 암 환자들은 연극을 통해 자신의 삶과 투병 과정을 되돌아보게 된다. 양씨는 환자들의 실제 이야기를 각색해 연극 대본으로 만들고, 6월 말쯤 실제 환자들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연극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그는 “대부분 연극이 처음이라 정확한 메시지 전달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연극에 대한 열정은 전문 배우 못지않다”면서 “아직 환자들이 쑥쓰러워 자신의 얘기를 많이 하지 않지만 더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내 따뜻한 연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이 프로그램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유방암 환자 권순애(55)씨는 “연극을 통해 상대방 역할을 해 보면서 마음의 응어리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좋았다”고 말했다.

문병인 이대여성암전문병원 유방·갑상선암센터장은 “암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긍정적인 마음이다. 연극교실 같은 다양한 사회활동이 더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