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CT검사의 두 얼굴
입력 2011-05-02 17:47
요즘 국내 심장내과 전문의들에게 관심을 끄는 장비 중 ‘코로나이저’란 게 있습니다. ㈜이루메디란 중소기업이 개발한 것으로, 심장 부위 피부에 8개의 센서를 붙이고 심장박동 시 맥파(脈波)를 감지해 심근경색이나 협심증 같은 심장혈관 질환 발병 위험을 단 10분 만에 진단하는 장비입니다.
지금까지 심장병 환자들이 심장혈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선 조영제를 투약하고 허벅지나 팔뚝 혈관을 통해 가느다란 도관을 심장혈관까지 밀어 넣거나(심장혈관조영술),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로 흉부를 촬영해 얻은 영상이 필요했습니다. 이 두 검사는 영상 촬영 시 방사선 노출과, 조영제 사용으로 인한 과민성 쇼크 등의 사고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입니다. 코로나이저가 심장내과 의사들의 흥미를 끄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방사선은 ‘양날의 칼’에 비유됩니다. 잘 쓰면 몸을 이롭게, 잘못 쓰면 몸을 해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방사선은 또한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특히 의료 서비스 이용 시 거의 피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거의 모든 영상의학진단에 방사선이 이용되고, 암과 같은 혹 덩어리를 태워서 제거해야 할 때 치료용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물론 방사선 노출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치료 쪽보다는 진단 쪽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CT검사입니다. ‘CT 만능’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현대의학은 CT 의존도가 높습니다. 심지어 종합검진 프로그램에도 암 조기발견을 위한 ‘명품검진’이란 이름으로 CT검사를 끼워 넣을 정도입니다. 특정 질병의 진단과 치료 방법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건강한 상태에서 CT검사를 받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중앙대병원 영상의학과 심형진 교수는 “쓸데없이 방사선을 많이 쬐는 검사를 두고 명품이라고 선전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미국 컬럼비아대 데이비드 브레너, 에릭 홀 박사팀은 CT 촬영이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CT검사자 중 1.5∼2%가 암에 걸린 것으로 밝혀졌다고 2007년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보고했습니다. 또 미국심장협회는 2008년에 흉부CT는 심장혈관 질환이 확실히 의심될 때만 시행해야 한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젊은 여성이 흉부CT 검사를 남용할 경우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이 40배나 높아진다고 경고했습니다.
방사능 노출 위험은 CT 촬영을 반복할수록 커집니다. 1회 촬영 시 노출되는 방사선 양은 전신CT 30∼100m㏜(밀리시버트), 머리CT 50m㏜, 복부CT 30m㏜, 흉부CT 8m㏜입니다. 일상생활 중 노출되는 자연 방사선 양이 1년에 2m㏜이고,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정한 연간 인공 방사능 피폭 한도가 1m㏜(일반인)∼20m㏜(원전 종사자 및 의료인 등 방사성 동위원소 취급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CT검사 남용으로 인한 방사선 노출 위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위험을 일반인은 물론 국내 의료진의 상당수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국내 한 대학병원이 최근 흉부CT 검사를 처방하는 내과 의사 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6.6%가 흉부CT의 방사선 세기를 1m㏜ 이하, 93.3%가 X선의 100배 미만이라고 각각 잘못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흉부CT가 방출하는 방사선 양은 X선 검사의 약 400배에 이릅니다. 의료용 방사선의 위험에 관한 한 모르면 당연히,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건강에 해를 끼칠 정도의 방사선에 노출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길뿐입니다. 방사능 오염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예에서 경험했듯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의료용 방사선 장비도 마찬가집니다. 위험한 방사선 노출을 피할 수 있는, 코로나이저와 같은 신(新) 의료기술 개발 및 보급을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총력 매진하길 바랍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