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호루라기의 쓰임새

입력 2011-05-02 17:47

불어서 소리를 내는 신호용 도구인 호루라기. 비슷한 단어로는 호각 우레 등이 있다. 간단한 도구지만 쓰임새는 참 다양하다. 무리를 통솔할 때, 지시를 내릴 때, 운동경기 시작과 끝을 알릴 때, 범인을 쫓을 때, 도움을 청할 때, 동굴을 탐험할 때….

특별히 우레는 그 소리가 마치 장끼가 까투리를 꾀는 것과 비슷해 꿩 사냥을 할 때 사용됐다. 월탄 박종화의 역사소설 ‘임진왜란’에 나오는 호각은 일종의 군령(軍令)을 내릴 때 쓰였다. “도원수를 대신해서 장대에 올라 호각을 불어 백여 명 군사를 모은 뒤에, 성안으로 휘동해 들어가라는 영을 내렸다.”

도심을 행진하는 대열의 맨 앞에 선 관악대 대장은 대원들을 일사불란하게 인도할 때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코흘리개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훤칠한 키에 구김살 없는 군복을 입고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절도 있는 동작으로 교통정리를 하던 헌병의 카리스마도 잊을 수 없다.

야간통행금지가 시행되고 계엄령이 내려진 시절에는 군인과 경찰의 호루라기 소리를 심야에 자주 들었다. 적막을 깨는 호루라기 소리와 누군가를 쫓는 둔탁한 군홧발 소리는 통치세력의 무소불위와 무지막지함을 상징하는 소음이었다. 호각을 좋아하는 예비역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고된 훈련이나 사역 중간에 주어진 휴식시간을 깨는 호각 소리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교육의 절반 이상이 얼차려인 유격훈련 도중에 훈련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는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우리 사회에서 아동을 상대로 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자 어린이에게 호루라기를 나눠주는 일이 들불처럼 번졌다. 등·하교 길을 지키는 자원봉사자도 호루라기를 애용한다. 요즘 호루라기는 색상과 생김새가 다양해 액세서리로도 손색이 없다. 일본인 구니자키 노부에는 아동범죄 예방수칙 등을 소개한 ‘우리 아이는 내가 지킨다’(니들북)에서 호루라기 ‘예찬론’을 펴고 있다. 호신용 벨처럼 배터리가 방전되지도 않고 목에 걸고 있으면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엊그제 “청와대가 호루라기를 불면 당이 그대로 따라 하던 ‘호루라기 정치’를 끝내야 한다”고 비판했다. 4·27 재보선 참패 원인을 청와대와 한나라당 지도부에 돌린 발언이었다.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지는 호루라기를 빗댄 김 의원의 질책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환골탈태하는 것이 당·정·청의 살길 아닐까.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