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발레의 살아있는 전설’ 62세 모리시타 무대에 선다

입력 2011-05-02 19:31


일본이 낳은 불세출의 발레리나 모리시타 요코(森下洋子·62·사진)가 발레 인생 60주년을 맞아 무대에 선다. 그는 3∼4일 도쿄 분카무라에서 자신이 이끄는 마쓰야마(松山)발레단과 함께 ‘흰머리 여인(白毛女)’의 히로인으로 출연한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주역으로 무대에 서는 발레리나는 전 세계에서 그가 유일하다. 그는 이번 작품뿐만 아니라 매년 마쓰야마발레단의 정기공연 무대에 서고 있다. 이번 공연은 특히 지난 3월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 사고로 실의에 빠진 피해자들을 초대하는 한편 수익금 일부를 기부할 예정이다.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히로시마 출신인 모리시타는 1일 도쿄신문 등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할머니는 당시 피폭으로 전신에 화상을 입으셨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공중목욕탕에 가는 등 긍정적으로 남은 인생을 사셨다”면서 “어렸을 때 히로시마 사람들이 잔해 더미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부흥에 열심이었던 모습을 보면서 모두 힘을 합치면 어떤 어려움이든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연하는 ‘흰머리 여인’은 중국의 혁명가극을 원작으로 1958년 초연됐다. 빈농의 딸이 아버지의 빚 때문에 기생으로 팔려가지만 탈출한 뒤 마을 사람들이 악덕 지주로부터 해방되도록 돕는다는 이야기다. 극중 주인공은 온갖 고생을 하는 바람에 머리가 전부 세어버렸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선녀로 추앙받는다. 이 작품은 58년 마쓰야마발레단이 일본 발레단으로는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 공연됐다. 72년 일본과 중국이 수교하기 전인 50년대 양국 문화교류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모리시타 요코는 “피해지역 주민들이 이 작품을 보고 조금이라도 힘을 얻길 바란다”며 “기회가 되면 동북 지방의 피해지역에서 이 작품을 공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3살 때부터 발레를 시작한 모리시타 요코는 24살 때인 74년 동양인으로는 처음 세계적인 발레 콩쿠르인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150㎝의 단신이지만 뛰어난 테크닉과 표현력을 자랑하는 그는 루돌프 누레예프의 파트너로 파리오페라발레에 서는 등 “동양인에게 발레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을 불식시켰다. 그의 등장을 계기로 동양 무용수들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영국 로열오페라발레단 등 세계적인 발레단의 객원 무용수로 초대되는가 하면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가 그를 위해 작품을 안무하는 등 ‘일본 발레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