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퍼 500만 그릇 기념 오병이어 축제

입력 2011-05-02 17:43


[미션라이프] “밥 먹었냐?”처럼 정겨운 말이 있을까? 그러나 먹을거리가 넘치는 요즘 이 말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무의미한 인사가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떤 이에게 ‘밥 안부’는 생명을 여쭙는 일이다.

1988년 11월 어느 날 청년 최일도 목사가 서울 청량리역 굴다리 밑에서 굶주림으로 지쳐 쓰러진 할아버지에게 “진지 드셨습니까?”라고 물으며 라면을 끓여준 것을 계기로 시작된 ‘밥퍼’ 운동이 올해로 23년째를 맞았다. 끼니 때우는 것이 절실한 이들에게 최 목사와 ‘밥퍼 식구’들이 건넨 밥 한 공기. 이것이 쌓이고 쌓여 2일 500만 그릇을 돌파했다.

그동안 20여만 명이 정성껏 진지를 지어 드리는 일에 동참했다. 쌀이 떨어지면 누군가 쌀가마니를 가져왔고 배추가 귀하던 때는 한 농부가 배추를 실어 날랐다. 기적과도 같은 손길은 끊이지 않았고 다일공동체는 따뜻한 밥을 날마다 지을 수 있었다. 유명 연예인에서부터 대통령 영부인까지 봉사에 참여했다. 연예인인 션과 정혜영 부부는 하루에 만원씩 매년 365만원의 배식비를 기부하고 있다. 지금 ‘밥퍼나눔운동’은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네팔 등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마태복음 25장40절에 의지해 시작한 사랑의 운동이 기적을 낳은 것이다.

최 목사가 대표를 맡고 있는 다일공동체는 500만 그릇 돌파를 기념해 2일 오전 서울 답십리동 밥퍼나눔운동본부 앞 공터에서 ‘오병이어 행사’를 가졌다. 다일공동체는 지난해부터 5월 2일을 오병이어의 날로 기리고 있다.

행사가 시작되기 2시간 전부터 공터에 마련된 의자 300석은 손님으로 가득 찼다. 대부분 매일 같이 이곳으로 밥을 먹으러 오는 노숙인이나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이었다.

오전8시30분에 이곳에 도착했다는 조재관(71) 할아버지는 5년째 출석도장을 찍고 있다. 주일 교회에서 나눠주는 빵으로 평소 끼니를 때우는 조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하루 중 유일하게 곡기를 채운다. “국민연금을 받고 있지만 수도, 전기세 내면 오히려 마이너스야. 그래도 여기 오면 더운밥에 찬 3가지를 주잖아. 사랑으로 지어져서 그런지 여기 밥이 제일 맛있어.”

점심 한 끼를 먹기 위해 4~6시간 걸려 온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김상복(81) 할아버지는 수원에서, 남상진(80) 할머니는 안산에서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왔다. 오가는 길에 노상전도를 한다는 남 할머니는 “남은 밥을 싸가지고 가서 라면 스프에 말아 먹는다”며 “온 힘을 다해 전도하다보면 배가 금세 꺼진다”며 소녀같이 웃었다.

행사에는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 씨티은행 하영구 행장, 한나라당 장광근 의원, 미스코리아 이하늬, 가수 션 등 각계 인사와 자원봉사자, 무의탁노인, 노숙인 등 1500명이 참석했다. 평소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밥을 먹었던 노숙인들도 이날 배식 봉사에 참여했다. 양평 쉼터의 유태기(49)씨는 “주는 것 없이 살았는데 남에게 밥을 베풀 수 있다는 생각에 더없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참석자들이 500인 분의 비빔밥을 한꺼번에 비벼 나눠 먹은 일. 참석자 대표들은 지름 2m의 나무 솥에 쌀밥과 갖가지 나물, 밤 호두 잣 등 30여 가지를 넣어 큰 주걱으로 버무려 비빔밥을 만들었다. 함께 밥을 나눠 먹은 이 자리는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는 축제의, 사랑의 장소였다. 최 목사는 “우리 모두 이 밥 먹고 밥이 되어 사랑을 나누자”고 말했다. 모두가 밥이 된 유쾌한 현장이었다. 이날 사랑이란 말은 공허하지 않았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신은정 sej@kmib.co.kr